오철우 기자
유레카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유권자의 4분의 1 이상이 전자투표 기계 앞에서 투표권을 행사했다고 한다. 유권자 인증을 받은 뒤 화면에 나타나는 후보 이름들 가운데 하나를 손으로 눌러 택하면, 투표 결과가 전자 데이터로 바뀌어 저장되고 중앙 시스템에 전송돼 자동집계되는 방식(DRE)이다. 터치스크린 방식이 현금자동지급기와 비슷하다. 주마다 따로 투표 방식을 정하는 미국에서 전자투표는 2000년 대선 때 재검표 사태가 있고 난 뒤 여러 주에서 채택됐지만, 투표용지라는 ‘실물’이 남는 게 아닌지라 믿을 만한 방식인지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과학저널 <네이처> 최근호에 미국의 전자투표 시스템 논란을 다룬 특집기사가 실렸다. 한쪽에선 전자투표가 미국 같은 다민족 국가에서 여러 언어로 투표를 안내할 수 있고 시각장애인 등의 투표권 행사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선거 비용 절감은 큰 매력이다. 다른 쪽에선 집계 시스템이 여전히 불안정하고 특히 보안 시스템이 삐끗하면 큰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부정 의혹을 사후 검증할 체제도 미흡하다. 전자투표 보안의 기술적 문제는 속속 극복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전엔 몰랐던 새로운 문제도 계속 제기돼, 전자투표가 믿을 만한 수준이 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보안을 강화하면 비용이 늘어나는 문제도 있다.
사실 종이투표가 안전한 방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얼마나 많은 부정 선거들이 있었던가. 전자투표도 마찬가지다. 부정한 의도 앞에선 강력한 보안 시스템도 무력하다. 오히려 보안이 뚫리기만 하면 간단한 조작으로 더 위험한 조작을 할 수도 있다. 전자투표가 믿고 쓸 만큼 안전하다는 ‘기술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전자투표 논란은 기술 혁신만으로 다 풀 수 없는 ‘사회에 대한 신뢰’ 문제이기도 하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