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상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
시론
헌법재판소가 13일 종합부동산세에 대해 세대별 합산은 위헌으로, 1주택 장기보유자에 대한 과세는 헌법 불합치로 결정했다. 이명박 정부의 각종 개정안과 합쳐지면 종합부동산세는 사망한 것과 다름없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국민 누구도 모르는 관습이 있었다고 하면서 위헌 결정을 했던 헌법재판소인데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예고편까지 보여주었는지라, 국민이 그리 놀라지 않는 듯하다. 그저 이번에도 어이없어할 뿐이다.
헌재에서 왜 이렇게 국민의 상식과 다른 결정을 내리는지 한동안 생각해 보았지만 합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대담한 가설’을 세워 보기로 했다. 가설은 두 가지, 음모론과 공처론이다.
음모론이란 세상일은 다 거대한 음모의 결과라는 해석법으로서, 합리적인 설명이 안 되는 사건에 적용하기 매우 편리하다. 국제적으로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지면 믿거나 말거나 그 배경에 미국 중앙정보국이 있다고 해석하는 식이다.
헌법재판소와 ‘접촉’했다는 강만수 장관의 발언을 통해 음모론이 입증된 것 같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 나름의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몇 차례 ‘접촉’만으로 오염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보다는 오히려 묵시적 음모, 침묵의 카르텔이 작용했다는 가설이 더 그럴듯하다.
사람은 자신의 이해관계와 어긋나는 일에는 경계심을 갖게 된다.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려고 해도 머리와 마음이 따로 노는 일을 많이 경험해 봤을 것이다. 그래서 공통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계층은 굳이 음모를 꾸미지 않더라도 생각이 비슷해진다. 헌법재판관 9명 중 8명이 종합부동산세 대상이라는 사실은 묵시적 음모론에 무게를 실어준다.
공처론은 좀 민망한 가설이다. 대한민국 부잣집 남편들이 아내 눈치를 보면서 지내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종합부동산세를 혐오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필자의 편견인지는 몰라도 남편보다는 아내가 부동산에 민감하다. 남편은 직장에 충성하느라 시간도 없고 생각도 못 미치는데 아내들은 시간도 있고 정보도 많고 게다가 샘까지 많아 부동산을 비롯한 재테크에 민감하다. 복부인이라는 말은 있어도 복남편이라는 말은 없는 걸 보면 필자의 생각이 아주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또 남편이 고위직에 갈 만한 나이가 되면 자녀들도 다 커버리고 남편과 아내만 남은 상태라 아내 눈치를 보지 않으면 견디기 어렵다. ‘간 큰 남자’ 이야기가 시리즈로 나올 정도다. 이런 모습은 지방보다 서울이 더하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아내가 가정의 재정권을 쥐고 있다. 남편이 수입을 통째로 아내에게 전하면 아내가 남편에게 용돈도 주고 재테크도 한다. 그런데 남편의 수입이 늘어나지도 않는데 거액의 세금이 부과되고, 더구나 남들도 다 하는 재테크 좀 했다고 손가락질하는 듯한 분위기까지 느껴져 매우 기분 나쁘다.
남편이 아내와 더불어 살려면 겉으로라도 이런 아내의 정서에 동조할 수밖에 없고, 아예 아내처럼 변하면 만사가 편하다. 그러지 않으면 언제 말실수로 아내의 심기를 건드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부부가 화합하여 좀더 편하게 사는 게 무슨 잘못이랴?
이것이 음모론과 공처론이다. 이런 가설이 억울하다면 좋은 방법이 있다. 부동산 백지신탁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부동산 백지신탁제란 헌재 재판관을 포함한 고위 공직에 취임할 때 실수요 외의 부동산을 백지신탁하고 퇴직 때 매입 당시 가격의 원리금을 현금으로 돌려받는 제도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부동산 불로소득과는 인연이 멀어지므로 음모론이든 공처론이든 발붙일 여지가 없어진다.
김윤상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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