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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대통령과 개 / 박찬수

등록 2008-11-17 20:34

박찬수  논설위원
박찬수 논설위원
아침햇발
애완견이든 사냥개든, 정치에서 개가 갖는 함의는 매우 시사적이다. 미국 대통령들의 애완견 사랑은 끔찍하다. 조시 부시 대통령은 스코틀랜드 테리어종인 바니와 잉글리시 스피링거 스패니얼종인 스팟을 ‘내 가족’이라고 부른다. 그가 “가족들이 잘 있다”고 하면, 그건 대개 쌍둥이 두 딸이 아니라 두 마리 애완견을 가리킨다.

부시만이 아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팔라’, 린든 존슨의 ‘그’와 ‘그녀’, 리처드 닉슨의 ‘비키’, 빌 클린턴의 ‘버디’까지, 대통령 이미지는 항상 개와 겹쳐 기억된다. 이들의 개 사랑엔 개인적 취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를 자연스레 부각시키려는 정치적 상징의 일종이라고 학자들은 분석한다. 퍼스트 도그(First Dog)라 불리는 백악관의 개가 국민적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계기 자체가 매우 정치적이다.

1944년 태평양 지역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야당인 공화당은 “실수로 애완견을 두고 왔다가 급히 구축함을 보내 다시 데려오게 했다”고 공세를 퍼부었다. 루스벨트는 라디오 연설에서 이렇게 반격했다. “공화당은 나와 내 가족을 공격하는 것으론 모자라 애완견 팔라까지 공격한다. 나는 괜찮지만, 팔라는 분개하고 있다.” 팔라는 일약 전국적 스타로 떠올랐다.

대통령이 처한 정치적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 건 클린턴의 버디였다.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클린턴의 거짓말이 들통나자, 여론은 물론이고 아내 힐러리와 딸 첼시마저 등을 돌렸다. 힐러리는 자서전에서 “우리 가족 중에 유일하게 클린턴을 따른 건 애완견 버디였다”고 썼다. 클린턴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버디와 함께 산책하는 사진은, 국민 신뢰를 잃고 정치적 낭떠러지 앞에 선 권력자의 고독을 상징한다.

우리나라 대통령들도 개를 키웠지만, 뉴스의 초점이 된 적은 없다. 개를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미국과 다른 탓이 클 것이다. 한국에서 ‘개’란 단어가 갖는 정치적 의미는 친근함과는 거리가 먼 매우 공격적인 형태인 탓도 적지 않다. 인정사정 없이 상대방을 물어뜯는 우리 정치의 모습이 고스란히 개한테 투영돼 있다.

요즘 다시 화제가 된 ‘사냥개’도 그런 예다. 싸울 때는 사정없이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사냥개는 싸움이 끝나도 쉽사리 얌전해지지 않는다.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고사는 주인의 몰인정을 비난하는 동시에, 사냥개의 사나움을 경계한다.

“사냥이 끝났으니 사냥개는 필요 없다”는 한나라당 의원의 말에서 촉발한 ‘사냥개 논란’은, “아직 사냥은 끝나지 않았다”는 식의 사냥시기 공방으로 번졌다. 여당 인사들이 자신을 사냥개에 비유하며 효용성이 있냐 없냐를 따지는 것도 우습지만, 지금 필요한 건 생존 본능에만 충실한 사냥개들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이 ‘사냥개’ 속성에 충실하려 하면, 곳곳에서 문제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지난주에 인사 청탁과 함께 돈을 받은 혐의로 공기업 사장이 구속된 건 단적인 사례다. 그는 이 대통령 서울시 인맥의 핵심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런 그가 인사를 미끼로 수천만원을 건네받은 시기는 현정부 출범 직후인 3월이다. 정권 출범과 동시에 뒤로는 돈을 받아 챙겼다니, 날카로운 후각을 가진 사냥개의 본능이 이런 것일까 싶다. 벌써 인사 부탁과 함께 돈이 오간다면, 기업 구조조정 과정 등에선 얼마나 많은 로비와 청탁이 횡행할지 알 수 없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냥개들이 출현할까 걱정스러울 뿐이다.


박찬수 논설위원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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