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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나라 거덜내는 1% 특권동맹 / 고명섭

등록 2008-11-18 21:07수정 2009-01-12 09:45

고명섭  책·지성팀장
고명섭 책·지성팀장
한겨레프리즘
플라톤을 낙담케 한 것은 소크라테스 재판 자체가 아니라 어처구니없는 판결 과정이었다.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신을 믿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기소된 것도 억지스러운 일이었지만, 배심원단이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은 더 분별력을 잃은 처사였다. 유죄 표를 던진 배심원이 가까스로 과반수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었을까. 그러나 그 위안도 한순간이었다. 뒤이은 형량 판결에서 소크라테스 쪽은 벌금을 내겠다며 30므네를 제시했다. 어떻게든 스승을 살리고 싶었던 플라톤이 서둘러 지급보증을 했다. 그러나 500명 배심원단은 360 대 140으로 사형을 확정했다. 무죄라고 했던 배심원 가운데 반수 가까이가 사형에 표를 던졌다. 이 앞뒤 안 맞는 판결 앞에서 플라톤은 절망했다. 소크라테스 재판은 아테네 사회의 최대 스캔들이 됐다. 이 사건 이후 아테네는 급속히 문명 와해 국면으로 치달았다. 절망한 플라톤은 조국을 떠나 12년 동안이나 나라 밖을 떠돌았다.

몰상식한 정치 재판의 기념비적 사건을 재연한 것이 이번 헌법재판소의 종합부동산세(종부세) 판결이다. 헌재는 종부세 취지는 이해한다는 듯 살려두면서, 곧바로 세대별 합산 과세가 위헌이라고 결정함으로써 종부세 척추를 통째로 들어내 버렸다. 헌재의 종부세 판결은 계급 투표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7명이 수십억원대 재산가들이었다. 이들은 마치 한 사람처럼 단합해 세대별 합산 과세를 위헌으로 몰았다. 헌재는 헌정질서를 지키는 독립적 기관이 아니라 청와대-행정부-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1% 부자·특권 동맹의 일원이자 방패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집값 안정, 공평 과세, 경제 정의라는 공익적 가치는 이들의 사익 추구 욕망에 치여 맥없이 무너졌다.

백치를 뜻하는 영어 단어 이디엇(idiot)은 플라톤 시대의 그리스어 이디오테이아(idioteia)에 뿌리를 둔 말이다. 이디오테이아는 ‘어리석음’이라는 뜻과 ‘사적인 삶’이란 뜻을 동시에 품고 있다. 사적인 삶에 매몰돼 공적인 삶을 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몽매한 사람이다. 그 시대의 귀족 독재자들은 평민들에게 돈을 나누어주고 아테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땅을 부쳐 먹도록 했다. 아테네 시내 복판에서 이루어지던 직접민주주의 정치에 평민이 참여할 길을 미리 막으려는 술책이었다. 평민을 사적인 일에 가두어 둠으로써 영원히 우매한 자로 살게 하려 했던 것이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평민들이 몽매의 우리를 걷어내고 공적인 관심사에 뛰어듦으로써 개화했다. 아테네 민주주의 전성기를 이끈 페리클레스의 연설은 이 지점을 보여준다. “이곳 아테네에서는 정치에 무관심한 시민은 시민으로서 쓸모없는 인간으로 간주됩니다.”

대한민국의 사정은 그 시절 아테네와 정반대다. 이곳에서는 특권층이야말로 사적인 관심사에 매몰돼 공적 관심사를 팽개치는 부류다. 이들이 말하는 정치는 진정한 정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정치라는 이름으로 공익을, 나라를 거덜내고 있을 뿐이다. 사회귀족·국가귀족들의 어리석음에 맞서 공익적 가치를 지키려 분투하는 쪽은 오히려 평범한 시민들이다. 헌재가 종부세를 난도질하던 때에 ‘미네르바’라는 필명의 인터넷 시민은 절필을 선언했다. 한국 경제의 위태로움을 냉철하게 진단하며 정부에 바른 대책을 촉구하던 그는 그 정부로부터 집요한 침묵 압박을 받았다. 공익에 관심을 두지 말라는 협박에 그는 “마음속에서 한국을 지운다”고 썼다. 이 나라는 ‘플라톤의 망명’을 부추기고 있다.

고명섭 책·지성팀장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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