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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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청수 경찰청장은 지난 9월10일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에게 경찰의 차량 검색 등을 사과하기 위해 대구 동화사를 찾았다. 어 청장은 두 시간을 기다렸지만, 스님들과 신도들의 반발로 지관 스님을 정식으로 만나지도 못한 채 발길을 돌렸다. 지관 스님은 이날 “불교의 최고 덕목은 자비이지만 자비가 아닌 다른 방법이 있다면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계종 기획실장이자 대변인인 승원 스님은 앞서 “앞으로 아무리 찾아와도 사과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에 대한 불교계의 분노는 거셌다. 서울광장에서 연 헌법파괴·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8월27일)를 비롯해, 전국 1만여 사찰의 동시 법회(8월30), 대구·경북 범불교도대회(11월1일), 광주·전남 범불교도대회(11월15일) 등 최근까지도 불자들의 항의가 계속됐다. 이 대통령까지 나서 유감을 표명하는 등 달래기에 나섰지만, 불교계는 어 청장의 경질을 마지노선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지관 스님은 그저께 조계사에서 어 청장의 사과 방문을 받고는 “이제는 다 없는 걸로 하고 맡은바 책임을 다해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범인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큰스님의 ‘대자대비’인가? 조계종 기획실장 장적 스님은 금강경에 나오는 환지본처(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란 말을 들어 “사과니 수용이니 하는 말보다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관 스님은 오래 전부터 어 청장뿐 아니라 동향인 이 대통령 쪽과도 가깝다. 1993년 해인사 주지 때 합천경찰서장이던 어 청장과 인연을 맺은 뒤 그를 “후배로 여겼으며”, “나도 이 대통령을 찍어 줬다”고 고백한 바 있다. 정권과 대립한 것이야말로 ‘남의 자리’였고 지금이 ‘본래 자리’일지 모른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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