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오바마 찾기 / 여현호

등록 2008-11-20 20:00

여현호  논설위원
여현호 논설위원
아침햇발
따지자면 케네디 신화에도 거품은 있다. 알려진 이미지와 달리, 3년도 채 안 된 그의 집권 동안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비밀공작 횟수는 163차례로, 전임 아이젠하워 대통령 집권 8년 동안의 170차례에 육박한다. 케네디는 카스트로를 암살할 비밀부대를 조직할 것을 두 차례나 명령했고, 베트남의 고딘디엠 대통령 제거에 동의하기도 했다.

‘블랙 케네디’라는 버락 오바마는 어떨까? 그의 당선은 그 자체로 세계사적 사건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많은 이들은 그가 미국을 쇠락의 위기에서 구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이고, 그를 위해선 가능한 수단을 다 동원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역시 미국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그가 전임자의 ‘미국 일방주의’와는 다른 노선을 주창한다고 해서, 또 사회운동가 출신으로 변화와 진보를 말한다고 해서 마냥 기대와 믿음만 보낼 순 없는 이유다.

한국에서 오바마 바람이 케네디의 그것보다 덜하다고 느껴지는 게 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다가오는 ‘경제 빙하기’의 공포가 무엇인가에 열광할 열정을 앗아버렸을 수도 있다. 사실, 우리에겐 지금 오바마의 모습이 낯익은 것이기도 하다. 인터넷과 풀뿌리 지지세력에 힘입은 대통령 당선, 마이너들의 벅찬 감격과 기대는, 바로 몇 해 전 노무현 대통령 당선 때 이미 경험한 일이다. 그런 기대와 꿈이 그 뒤 조금씩 허물어지고 배신당했으니, 이제 또 ‘한국의 오바마’를 찾기가 두렵고 허망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렇게 희망조차 잃어가고 있다는 데 있다. 정치인이 구세주일 순 없지만, 앞으론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변화의 희망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구심점은 될 수 있다. 그런 기대를 품을 만한 이조차 없다면, 공동체를 지탱하기 어렵게 된다. 현직 대통령이 그런 희망의 상징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성장의 희망을 앞세워 당선됐던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사람들이 성장의 기대를 접은 지는 이미 오래다.

반대쪽이라고 나을 것도 없다. 민주당에는 가능성 있는 주자조차 흐릿하다. 오바마와 비슷한 나이, 비슷한 생각에, 비슷한 인생경로를 걸어온 젊은 정치인들은 많은 동시대인들을 실망시켰다.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은커녕, 이젠 세력으로서도 오합지졸이다. 그 중 어떤 정치인은 뒤로 몰래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될 지경에 이르자 정당 간판 뒤에 숨어 이십일 넘게 농성을 하고 있다. 과거 학생 지도자에겐 지킬 명분과 지켜 줄 학우들이 있었지만, 지금의 그는 차가운 눈길만 받을 뿐이다. 그렇게 가다간 민주당과 동년배들까지 통째로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다.

오바마의 승리를 인종이나 이념 말고 세대교체로 해석하는 시각이 있다. 존 케리와 조지 부시가 대결한 2004년 대선처럼 지금껏 미국 정치를 지배한 것은 베트남전의 짙은 그림자와 60년대에서 비롯된 진보와 보수의 문화 싸움이었지만, 이번에 오바마를 압도적으로 지지한 1960년생 이후 세대는 그런 문제를 더는 심각하게 여기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오바마가 통합을 말하는 것도 그런 맥락일 수 있겠다.

지금 한국에서도 과거의 패러다임과 행동 양식으로는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끌어내기 어렵다. 먹고사는 문제가 무엇보다 급해진데다, 좌파니 뭐니 손가락질하는 데도 어지간히들 이골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니 과거 경력 말고는 내세울 업적이 마땅찮은 몇몇 ‘386 정치인’이나, 그들을 욕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콘텐츠를 내보이지 못한 일부 ‘뉴라이트 정치인’들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리되면 알짜배기 ‘오바마 세대’들이 나서야 한다.


여현호 논설위원yeop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