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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법무부의 외국법 ‘오독’ / 박경신

등록 2008-11-20 20:01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
기고
법무부와 한나라당은 의견이나 감정의 표현도 누군가에게 모멸적이라면 그 사람의 요청이 없이도 형사처벌하겠다는 사이버 모욕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 법이 국가 모독죄처럼 정부나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여론을 제압하는 데 남용될 수 있음은 세계 역사에서 이미 입증된 바 있다. 그럼에도 법무부는 외국법을 잘못 인용하면서 사이버 모욕죄를 도입해야 한다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13일 열린 법조언론인클럽 토론회에서 법무부 김태우 검사는 외국에도 사이버 모욕죄가 이미 존재하거나 비슷한 법의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올 7월 검찰이 조·중·동 광고 싣지 말기 운동의 처벌을 위해 2차 불매 행위와 관련된 외국법을 왜곡했던 것에 못잖은 심한 왜곡이다. 법무부의 외국법 ‘오독’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첫째, 법무부는 “프랑스는 사이버상 모욕죄를 출판물에 의한 모욕죄와 동일하게 취급하여 일반 모욕죄에 비하여 가중처벌하고 있다”(언론의 자유에 관한 법률 제33조)고 했다. 그러나 이 조항은 모욕죄 조항이 아니고 혐오죄 조항의 일종으로서 민족·인종·종교·성별·성적취향·장애 또는 원국적과 관련된 차별적 혐오적 발언을 규제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모욕죄는 독일·일본·우리나라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에서는 사문화되었고, 일본에서는 보통 벌금형 정도로 경미하게 처리되며 이마저도 국제기구들의 비난에 처해 있다.

둘째, “미국은 연방 형법에 사이버 폭력을 범죄화하는 법안을 제출한 상태”라고 한 법무부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단지 2006년 6월에 펜실베이니아 주의회 의원 한 명이 주의회에 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 및 괴롭힘을 범죄로 만드는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나 이 법안은 통과는커녕 제출되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2008년 현재 미국 어디에도 그러한 법은 없으며, 그 밖에 사이버상 언사가 단순히 과격하다거나 경멸적이라고 해서 처벌하는 법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당연하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대한 침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의 경우도 물리적 폭력, 사이버 명의도용, 사생활 침해, 명예훼손 등으로 이뤄지는데, 개별 행위에 대해서는 이미 별도의 법적구제를 받을 수 있다.

셋째, 법무부는 “미국에는 학교 내 사이버 폭력에 대해 학생을 제적 또는 정학시키는 법률이 다수 주(아칸소·아이다호·아이오와·미네소타·뉴저지)에 존재하고 있다. 또한, 다른 주(오리건·캘리포니아 등)에서도 같은 내용의 법안이 제안되어 있는 상태다”라고 주장하였다. 이 또한 견강부회다. 오래 전부터 미국에는 학교 왕따 방지대책을 세우도록 강제하는 주법들이 이미 30여 주에 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이와 같은 행위가 사이버 공간을 매개로 이루어지자 집단 따돌림 및 괴롭힘의 정의에 사이버상의 언사도 포함하게 된 것일 뿐이다. 교실에서 학생이 급우를 괴롭혀 학교질서를 어지럽힐 경우, 학교의 교육방침에 따라 징계할 권한이 있고, 이 괴롭힘이 사이버상으로 이뤄질 경우에도 이 권한은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음은 당연하다. 김 검사가 말하는 법은 이런 교육적 차원의 징계권이 법제화된 것뿐이다. 모든 경멸적인 언사를 형사처벌하겠다는 사이버 모욕죄의 입법선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법무부가 법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법무부는 우리나라의 사이버 공간을 학교로, 대한민국 국민을 학생으로 보고, 정부가 국민이 욕한다고 징역형까지 살릴 수 있는 사이버 모욕죄는 ‘사랑의 매’ 쯤으로 보는 것 같다.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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