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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대입 개혁, 선발 투명성 확보가 관건 / 정민승

등록 2008-11-23 19:49

정민승  방송대 교육과 교수
정민승 방송대 교육과 교수
시론
수능이 끝나고, 면접과 논술의 계절이 왔다. 최근 입시 추세를 보면, 내신을 강화하자는 쪽에서 수능을 강화하자는 쪽으로의 변화가 눈에 띈다. 각각 ‘중등교육 정상화’와 ‘공정한 선발자료’를 내세우며 나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이런 공방은 내신과 수능이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들 가운데 어떤 쪽을 더 강조하느냐 하는 차이에 불과하다. ‘어떤 학생들을 선발하고 길러낼 것인가’ 하는 근원적 문제에 대한 규범적 논의를 찾기는 어려운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자. 대학은 “선발의 주체는 대학이고 따라서 선발 권한이 대학으로 이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발 주체가 원하는 사람을 원하는 방식으로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지원자들에게 명료하게 알려주어야 옳을 일이다. 하지만 대학이 어떤 학생을 원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특성화가 대학의 중요한 방향이라고 하면서도 특성화에 맞춰 학생의 자질을 요구하는 대학은 없다. 그저 ‘성적이 좋은 학생’이라는 ‘전국적으로 합의된’ 기준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내신 강화론은 어떤가. 내신 강화론은 그것이 고교교육을 정상화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학생을 길러내겠다’는 목적이 없는 고등학교에서, 내신은 당연히 교과시험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2005년 9월, 내신 강화 방안에 대해 곧바로 고교생들이 촛불시위를 벌였다는 사실에서 드러나듯이, 학생들은 내신 강화를 ‘3년간의 수능’으로 받아들인다. 내신 강화가 곧바로 고교 정상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이런 점에서 내신을 통한 선발 또한 ‘낭만적’인 대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지금, 결국은 ‘대학의 사회적 책임’이 거론되는 것이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명료하게 대학에게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대학이 경쟁력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없다”는 대학의 불평은 사실은 동일하게 대학에 적용된다. 대학이 어떤 자질을 가진 학생을 뽑을 것인지,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소외지역이나 계층을 안배할 것인지, 글로벌 리더를 키우자면 어떤 능력을 갖춘 사람이 요구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면, 그리고 그 제시된 내용을 투명하게 입시에 반영한다면, 과도한 입시 경쟁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완화될 수 있다. 더불어 시민사회가, 내신을 강조하는 일에만 머무르지 말고 대학의 입시정책에 대한 면밀한 감시자가 된다면, 그래서 대학이 기회균형 선발자를 제대로 선발하는지, 도달하기 힘든 조건을 제시해서 결과적으로 소외계층 합격자의 수를 줄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영어에 지나친 특혜를 주는 전형을 명시적으로가 아니라 ‘꼼수’를 써서 늘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꼼꼼하게 감시한다면, 이 역시 입시의 정당성을 높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사실, 학생들이 입시의 과정에서 배워야 할 것은, 시험점수를 잘 따는 기술이 아니라, 사회가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운영된다는 믿음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맞는 첫 번째 ‘사회적 통과의례’가 예측 불가능한 운이나 자신의 노력과 관계없는 경제력, 혹은 제도의 전횡으로 채워진다면, 상당수의 학생들은 불안과 실망과 좌절 속에서 젊음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토플이나 대학과목 선이수(AP) 등의 ‘꼬리표를 가진 소수 집단’을 선발하기 위해서 전형기준을 교묘히 조작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는 고려대가 수시전형 기준 발표를 입시 후로 미룬 것은, 한 명문대학에 대한 실망을 넘어서서 우리 교육 전반에 대한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정민승 방송대 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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