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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오바마 당선에서 배울 점 / 조국

등록 2008-11-24 19:30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시론
졸고 “오바마는 ‘좌빨’ 아닌가?”(<한겨레> 11월17일치)는 현 정부와 보수진영의 자기모순적 행태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버락 오바마가 이끌 미국에 대한 전망도 소략히 밝힐 필요를 느낀다.

미국 민주당은 고전적 자유주의자, 사회적 자유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등이 한 지붕 아래 모여 있는 정당이다. 오바마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면서도 부의 집중은 바로 그 자유를 위협한다고 파악하고 적극적 국가 개입을 선호하는 사회적 자유주의자로 분류된다. 미국에서 사회적 자유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는 ‘리버럴’이란 이름으로 구별 없이 통칭되곤 한다.

오바마가 노동에 의한 자본통제와 같은 사회주의 정책을 펴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부자의 부담은 더 늘리고 금융자본은 더 규제하면서 노동계급과 중산층을 배려하는 정책을 펼칠 것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월스트리트’가 아니라 ‘메인스트리트’가 중시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가족 배경처럼 인종융합적 정책을 펼치고, 여성과 성적 소수자의 인권 옹호,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등 인권 친화적 정책을 펼칠 것도 쉽게 예상된다. 이러한 좌로의 몇 걸음 이동은 일하는 보통 사람과 소수자의 팍팍한 삶을 위로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봤자 오바마는 하버드 로스쿨 출신 엘리트이자 총자본의 대리인일 뿐 아니냐라는 냉소적 비판도 있겠지만 이러한 진보의 의미는 적지 않다.

그렇지만 동시에 오바마는 현실 정치인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선거 과정에서 그는 150만명에 이르는 풀뿌리 기부자의 지원을 받았지만, 동시에 대기업으로부터도 막대한 선거자금을 받았다. 앞으로 그는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이익집단의 상충되는 이익을 조정해 나가야 한다. 이때 그가 좀더 철저한 사회·경제적 개혁을 요구하는 풀뿌리 지지자들을 외면하고 민주당 내 우파나 ‘오바마 콘’, 즉 자신을 지지한 보수파의 품에 안겨 버린다면 그는 또다른 ‘월스트리트 보이’가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오바마가 철저하게 미국의 국익에 기초한 대외정책을 펼칠 것임은 분명하다. 예컨대, 부시에 비하여 진보적인 오바마 정부라고 해서 한국 정부와 교섭에서 한국의 이익을 위할 리 만무하다. 그가 이라크 전쟁 종식과 조기 철군을 공언하였지만, 이와 동시에 미국 외교협회 발간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의 사활적인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을 배제해선 안 된다”라고 밝혔던 점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오바마 당선 앞에서 우리는 냉소적일 필요도 없고 동시에 그에게 과도한 기대를 가질 이유도 없다. 문제는 국내 정치다. 오바마 정도의 정책도 ‘좌빨’이라고 비난해 온 세력의 시대착오적 행태는 사실 더 언급할 가치가 없다. 대신 오바마의 당선이 한국 진보·개혁진영에게 장밋빛 미래를 보장해주진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오바마 진영 정도의 비전, 정책, 승부수, 선거전략, 대중동원력 등을 보여주지도 못하면서 오바마에 대한 품평만 하거나 오바마 당선을 자신의 승리로 착각하고 있다면 어찌 세상이 변하겠는가.

이에 감히 몇 마디 던지고자 한다. 무게를 잡고 실속을 챙기며 정치인으로서의 경력 관리에 힘쓰지 말고 오바마의 책이름처럼 “담대한 희망”을 제시하고 대중의 바다 속으로 자신의 몸을 던지고 풀뿌리에 엉켜 붙어라. ‘운동권’류의 논변과 행태를 버리고 대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동(言動)으로 대중을 감동시켜라. 치졸한 당내 계파 정치에 골몰하지 말고 당 내외에서 대중적 유망주를 발굴·육성·지원하는 데 적극 나서라. 그리고 소속 당의 틀과 이익을 넘어 정치적·사회적 연대를 모색하고 판을 키워라.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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