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시론
늦었다. 대북정책 전환의 시점을 놓쳤다. 금강산에 이어 개성관광도 중단되었다. 개성공단의 문도 서서히 닫히고 있다. 위기다. 앞으로 벌어질 상황이 아니다. 진정 걱정스러운 것은 이명박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다. 여전히 대북정책은 혼선이다. 정부의 대북 메시지는 소리로 치면 잡음에 해당된다. 정책조정을 통해 화음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대화를 제안하고, 그러면서도 선제공격을 말하고, 인권결의안을 발의하며,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말한다. 대통령이 직접 공개적으로 흡수통일을 발언한 것은 10년 만이다. 대화를 하겠다는 의지가 없다. 그런데 무슨 해법이 있을 수 있겠는가?
아무런 대책도 없는 기다림, 의연함일까? 그것은 막차가 끊긴지도 모르는 사람의 무모함이다. 앞날에 대한 예측이 터무니없다. 한-미 공조에 대한 기대감,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세계적 비확산 차원에서 북핵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오바마 외교팀이 한국의 투정을 받아줄 여유가 없다. 경제가 어려워서 외교가 우선순위에서 뒤처질 것이라는 예상, 그것은 한국적 사고다. 과거 미국 정부는 경제가 어려울 때 통상적으로 화해(데탕트)를 추구했다. 경제와 외교는 얽혀 있다. 경제를 살린다고 대북정책에 무관심한 이명박 정부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안보가 어려우면 경제를 살릴 수 없다. 그것을 우리는 ‘포괄적 안보’라고 부른다. 클린턴 행정부 때 만든 개념이다. 미국의 새로운 전략 변화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비용분담을 근거로 미국의 뒷다리를 잡겠다는 생각, 그것은 안 통한다. 오마바 외교팀은 바로 김영삼 정부의 뒷다리 잡기에 넌더리를 치던 사람들로 짜여 있다. 두 번 당하지 않을 것이다.
의연함은 또한 무지의 산물이다. 개성공단이 중단되어도 좋다는 생각,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명박 정부 사람들은 개성공단을 여전히 북한 퍼주기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들의 눈에는 한국 중소기업이 보이지 않는다. 당장 88곳의 입주업체, 조만간 입주 예정인 50여 기업, 그리고 수백 개의 협력업체, 이대로 가다보면 결국 문을 닫아야 한다. 정부나 한나라당이나 상관없다는 태도다. 자나깨나 경제를 걱정한다는 사람들이 이래도 되는가? 분노를 느낀다. 역시 강남부자들이 다르긴 다르다. 이제 한국의 중소기업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중국에서 베트남에서 경쟁력을 잃고, 이제 겨우 희망을 찾았는데, 이렇게 무너지는 것인가? 개성공단을 바라보던 중소기업의 절망감, 무시하지 마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여전히 이른 시점이다. 지금은 호기를 부릴 때가 아니다. 의연하게 김영삼 정부의 길을 가야 한다는 사람들,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 갈등으로 결국 나라를 들어먹었던 김영삼 정부의 길은 한번으로 족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능력이다. 대통령이 외교를 모르면, 외교를 아는 사람을 정해서 정부 내의 화음을 조율해야 한다. 이전 정부의 사람들을 쓰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한나라당에도 세계정세를 읽고,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인사들이 적지 않다. 그저 자리 보전에 급급해하는 영혼 없는 공무원들을 바꿔줄 때가 되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할 일 없이 엎어져 있는 장관들, 국민 세금으로 월급받기 부끄럽지 않은가?
지금 대북정책의 전환을 굴욕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국민들은 박수를 칠 것이다. 할 만큼 했다. 앞날을 봐라, 경제를 생각하고, 지금은 이념적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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