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도식/런던 도시연구소 ‘어번 플라스마’ 소장
기고
최근 공공디자인이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다. 도시디자인이 건물과 건물 사이를 디자인하는 학문영역이라고 볼 때, 공공디자인은 도시디자인 영역으로 볼 수 있다. 반가운 소식은 전문가만이 아니라 정권 창출과 유지에만 관심이 있던 정치가, 행정가, 지방의회의 시의원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속마음에는 가시적인 공공디자인이 시민의 표심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라는 인식에 기인한 발빠른 정치적 행보일지 모르겠다. 이 배경에는 전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이 큰 몫을 한 듯하다.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개발의 상징이었던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서울의 도심을 ‘비워’ 놓았다. 이는 우리의 도시계획 패러다임과 서울의 미래 공간구조 재편의 기반을 마련하는 역사적 사건임은 분명한 것 같다.
이런 도시공간의 가능성을 본 정치가들 사이에서 이제 공공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유행이 되고 있다. 하지만 공공디자인에 대한 체계적·장기적·지속적인 ‘전략과 관리’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부족해 보인다. 현재 공공디자인 정책이 가시적인 성과 위주, 소모적인 전시효과, 단편적 디자인의 행위 자체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10년, 20년을 바라보는 ‘전략과 관리’의 중요성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현재 공공디자인 중심의 도시재생사업의 전략과 관리로 유럽의 문화·상업도시로 부활하고 있는 영국의 버밍엄과 브리스틀시는 그 좋은 사례다. 이 두 도시는 ‘버밍엄 도심디자인 전략’(1989)과 ‘브리스틀 도심디자인 전략’(1998)의 작성을 통해 장기적인 공공디자인 전략을 구축하였다. 자치구의 도시계획과 연계된 이 두 공공디자인 전략서들은 도시 정체성 확립, 인구 증가, 경제 성장, 시민의 자존감 향상, 세계도시로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시너지 효과를 가져왔다.
브리스틀시의 경우, 2026년까지 도심 인구가 약 10만명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높은 수준의 공공디자인은 2008년 ‘유럽 문화도시’ 후보로 뽑히는 데 큰 구실을 하였다. 또한 사람중심·미적인 공공디자인 향상 운동인 ‘이해하기 쉬운 도시’(Legible City) 공공디자인 정책은 현재 여러 도시의 공공디자인 정책의 모델이 되고 있다.
버밍엄시의 경우, 2003년 개장되어 연간 3600만명이 방문하는 도심지 ‘불링’이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기존 도심의 도로를 보행화하고 연속된 도심광장에 형성된 불링의 쇼핑·레저 시설은 현재 유럽의 문화·쇼핑 중심지로 급성장하고 있다. 이 성공의 배경에는 공공디자인 전략과 관리를 통해 상업과 문화가 ‘장소’에 압축되는 상업적 문화공간을 만들어 낸 데 있다.
이 두 도시의 성공 배경에는, 지난 20년 동안 지속된 공공디자인 전략과 관리에 있었다. 양질의 도시공간 조성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의 ‘정체성’과 ‘공간 브랜딩’에 성공한 경우다. 도시공간과 연계된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에서 공공디자인은 선진국 진입을 위한 과정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격조 높은 선진국의 품위가 담긴 도시공간은 단시간의 노력과 투자 그리고 현란한 디자인에 의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장기적인 전략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관리와 투자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정부 중심적인 획일적인 공공디자인 정책보다는 지자체 차원에서 공공디자인에 대한 전략과 관리 그리고 이를 위한 ‘디자인 역량’의 개발이 필요하다. 현재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공공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정치가들의 단편적인 관심으로 끝나지 말아야 하겠다. 공공디자인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관리가 열매를 맺어 자부심과 휴식을 주는 도시공간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길 기대해 본다.
양도식/런던 도시연구소 ‘어번 플라스마’ 소장
양도식/런던 도시연구소 ‘어번 플라스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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