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객원논설위원칼럼
‘우리나라가 제대로 된 정부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을 갖게 합니다.’ 베이징 올림픽 연예인 응원단에 대한 국가 예산 지원이 정상적인 절차가 무시된 채 유인촌 장관과의 개인적 친분관계로 이루어진 사실을 밝힌 <문화방송> ‘뉴스 후’의 결론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개인적인 체험을 갖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필자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 있다.
1999년 소비자보호원은 시판되는 두부를 거두어 유전자 조작 콩 성분을 검사한 결과를 발표하여 106억원을 청구당하는 소송에 휩쓸렸다. 국산 콩으로 만들었다며 2배 정도 비싸게 팔던 두부에서 유전자 조작 성분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하자 풀무원은 잘못된 검사로 피해를 받았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 한다.
이 사건이 필자의 경험과 비교되며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소송에서 풀무원은 소비자보호원의 검사 방법을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시켰다고 한다. 이 당시 필자는 서울시·인천시·부산시 등 대도시의 수돗물이 장염을 일으키는 병원성 바이러스에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힌 논문 발표로 고건 시장의 서울시로부터 형사고발을 당하는 등 정부기관들로부터 집중공격을 받던 중이었다. 환경부와 서울시는 필자의 연구 결과를 부정하는 전략으로 검사 방법을 주로 트집 잡았다. 따라서 수돗물 오염 사건과는 반대로 민간 기업이 정부기관을 상대로 검사 방법을 빌미로 소송을 거는 일이 참 신기하게 여겨졌다. 수돗물 오염사건 때는 한국미생물학회에서 특별위원회를 꾸리고 필자의 검사 방법과 결과의 타당성을 인정하였지만 환경부와 서울시는 이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그 10년 뒤인 지난해에 와서야 환경부는 필자가 사용했던 검사방식 도입을 발표하였다.
사실 검사 방법의 타당성 여부는 관련 기관이나 전문가들이 이해관계를 떠나 공정하게 판정하겠다면 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행태는 정부 시스템 문제가 환경부와 서울시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식품안전 문제를 책임지는 식약청이 오히려 소비자보호원에 공문을 보내 ‘식품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이유로 ‘검사 결과 발표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식약청은 재판부가 의뢰한 풀무원 두부의 검사 의뢰를 거부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식품업계 이익 보호에는 적극적인 반면, 식품업계에 피해가 간다며 기본적인 책임마저 방기함으로써 식약청이 누굴 위해 존재하는지 분명한 입장을 국민들에게 선언한 것으로 보였다.
풀무원은 결국 소송을 취하하고 조용히 처리했지만 소비자들은 누가 옳은지 끝내 알지 못했다. 소보원에서 검사를 직접 한 실무자들은 소 취하에 동의하지 않고 끝까지 재판을 계속하기를 적극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자는 그 당시 그들의 주장을 충분히 이해했다. 필자가 서울시로부터 형사고발을 당하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공익사건으로 무료 변론을 자임했을 때, 오히려 수돗물 오염의 진실을 밝힐 절호의 기회라고 주장했던 경험이 떠올라서다. 시판하는 풀무원 두부에서 여러 번 반복 확인한 검사 결과를 누구보다 자신했을 그들의 입장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제대로 된 정부 시스템만 갖추었다면 진실한 정보와 선택권을 소비자들에게 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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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종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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