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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간통죄와 국회의원 / 강효백

등록 2008-12-03 21:07

강효백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교수
강효백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교수
기고
헌법재판소는 10월30일 간통죄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필자는 새로운 각도로 몇 가지 문제점을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 생활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할 간통죄의 법조문이 ‘그들만의 은어’처럼 알기 어렵다. 형법 제241조 간통죄 조항을 살펴보자 “①항 배우자 있는 자가 간통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항 전항의 죄는 배우자의 고소가 있어야 논한다. 단, 배우자가 간통을 종용 또는 유서(宥恕)한 때에는 고소할 수 없다.”

②항의 끝부분 ‘유서’는 웬만한 국어사전에는 없는데다가 ‘유서’(遺書)로 잘못 이해할 수 있다. 한자 표기 ‘宥恕’도 오늘날 중국에서조차 전혀 쓰지 않는 단어다. 형법 서적을 살펴보지 않는 한 ‘사후 용서’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길 없는 일반인이 “간통죄는 유서를 쓰면 고소할 수 없다”로 오인할 위험성도 없지 않다. 국민 모두가 주인인 민주국가에서 법은 소수 기득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좋은 법이란 누구든지 이해하기 쉬워야 하는 것이다. 간통죄의 합헌성 여부를 따지기 전에 우선 ‘유서’와 같이 암호처럼 어려운 한자어로 점철된 법조문을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

둘째, 1953년 제정된 형법의 모법(母法)은 현행 헌법이 아닌, 제헌헌법이다. 제헌헌법에는 현행 헌법에 규정된 성적 자기결정권이 도출되는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보장 등의 조항이 전혀 없다. 이런 제헌헌법 슬하의 55년 케케묵은 형법상 간통죄를, 현행 헌법에 고스란히 옮겨 품고 있으려니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것이다. 그동안 네 차례나 간통죄 위헌심사제청을 하여 헌법재판소를 곤혹스럽게 할 것이 아니라 국회가 현행 헌법의 정신에 부합하도록 입법적인 개선 노력을 기울였어야 마땅한 일이었다.

셋째, 간통죄에 대한 형벌이 지나치게 무겁다. 헌법재판소는 징역형만 규정한 법정형이 책임과 형벌간 비례원칙에 비춰 과중하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지만 강제추행죄의 책임과 형벌을 비교하여 본다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강제추행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 13살 미만의 사람에 대한 강제추행죄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500만원에서 3천만원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였다. 인간의 탈을 쓰고 차마 저지를 수 없는 추악한 범죄인 강제추행범에게는 강남 지역 아파트 한 평 값만도 못한 액수의 벌금을 물면 그만일 수도 있도록 한 반면에, 법과 도덕 사이에 위치한 간통범에게는 벌금으로 대체할 길을 원천봉쇄한 채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하는 죗값을 치르게끔 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간통죄는 1947년에 폐지한 반면에 강제추행죄는 6개월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13살 미만의 사람에 대한 강제추행죄는 3년 이상 징역으로 규정하여 벌금 대체의 여지를 없애고 징역형으로 엄중하게 다스리고 있다.

끝으로, 국회는 더이상 직무유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 국회의원의 제1의 존재 이유는 좋은 법을 만들고 나쁜 법을 좋은 법으로 개정하는 것이다. 299명의 비교적 젊은 국회의원들(현직 평균연령 54살)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9명의 연로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현직 평균연령 59살)에게 떠넘기는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쓸데없는 정쟁이나 하라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뒷말이나 하라고, 국민의 혈세로 고액의 세비를 주는 것이 아니다. 간통죄가 다섯번째로 헌법재판소에 위헌심사 제청되기 전에, 죄의 대가를 벌금형으로 치를 수 있도록 개정하든지, 아예 폐지하든지, 국회의원의 비싼 몸값에 걸맞은 활약을 펼치길 촉구한다.

강효백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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