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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개성공단 포기, 그 다음은? / 김지석

등록 2008-12-04 20:34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아침햇발
개성공단이 첫 제품을 생산한 것은 4년 전 이맘때다. 산뜻한 ‘통일냄비’였다. 2005년 1490만달러로 출발한 개성공단 생산액은 지난해 1억8477만달러까지 늘었다. 지금은 남쪽 기업 88곳에 북쪽 노동자 3만6천여명이 일한다. 상당히 틀이 잡힌 공단이다.

공단 사업은 쉽게 이뤄진 게 아니다. 1차 남북 정상회담 직후인 2000년 8월 현대아산과 북쪽 아태평화위는 본격적 사업 추진을 위한 합의서에 서명했다. 그런데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가 이 사업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2002년 10월에는 농축우라늄 의혹을 둘러싼 2차 북한 핵위기가 불거졌다. 착공식은 합의서 서명 3년 뒤인 2003년 6월에야 열렸다. 시범단지에 들어갈 15개 기업이 정해지는 데는 다시 1년이 걸렸다.

이제 개성공단 사업 자체를 놓고 시비를 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부시 행정부는 태도를 바꿨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 쪽은 남북 화해·협력 노력을 존중한다고 밝혀왔다. 개성공단은 이미 평화를 촉진하고 남북에 두루 이익이 되는 ‘상생 모델’로 자리 잡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전까지 이 사업에 대한 북쪽의 일관된 주장은 ‘군사적으로 민감한 지역을 통째로 내줬는데 왜 빨리 진척시키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이런 개성공단이 지금 위기를 맞았다. 전체가 문닫을 가능성도 없잖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는 논리를 개발하는 데만 골몰한다. 우선 주무 부서인 통일부는 사업 지속이 바람직하긴 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북쪽 책임론이다. 북쪽이 애초부터 개성공단에 큰 관심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정부 인사도 있다. 외화를 버는 곳으로 적당하게 활용하고 정리하는 게 북쪽 속셈이었는데, 때가 돼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개성공단 무용론이다. 북쪽이 남쪽 새 정부를 길들이기 위한 일관된 시나리오를 진행하고 있으므로 지켜보는 것이 최선이라는 시각도 뿌리 깊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이 대통령의 발언에는 개성공단에 대한 애착이 전혀 없다. 어떤 논리든 이 사업을 포기해도 좋다는 판단을 전제로 하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 이전 정권의 성과인 10·4 및 6·15 선언을 사실상 무시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부수기는 쉬워도 쌓아가기는 어려운 게 남북관계다. 이명박 정부의 임기는 아직 4년 이상 남았다. 지금 다 부숴버리면 앞으로 어떻게 할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정부에 참여한 많은 이들은 이전 정권 동안 대북 압박을 주장하면서 남북 화해·협력을 비난해왔다. 회담이 진행될 때는 부정적 여론을 전파하고, 합의 사항이 잘 이행되지 않으면 양쪽을 싸잡아 공격했다. 지금 대북정책은 그 연장선에 있다.

개성공단까지 동력을 잃고 나면 이명박 정부에겐 두 가지 시나리오만 남는다. 하나는 한반도와 관련된 주요 사안에서 방관자로 머물면서 북쪽 체제가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정책보다 주술에 기대는 길이다. 미국·중국 등이 북쪽을 잘 다뤄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대북 지렛대도 없고 대미·대중 영향력도 취약하니 열심히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늦게나마 잘못을 인정하고 대북 정책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어느 길이든 치욕적이다. 그런 선택으로 몰리는 상황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빨리 대북 정책을 전환해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잡아야 하는 이유의 하나도 여기에 있다. 남북의 역량 차이는 대결이 아니라 화해·협력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말로만 하는 상생·공영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김지석 논설위원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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