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하/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기고
또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연말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은 구세군의 종소리와 많은 사람의 옷깃에 있는 사랑의 열매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구세군의 종소리와 사랑의 열매는 보기만 해도 얼어붙어 있는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호주머니 속에 구깃구깃하게 접해 있던 지폐나 짤랑거리던 동전들이 나를 떠나는 순간, 발걸음은 더욱더 가벼워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경기 침체 여파로 후원·기부금품 감소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어 문제다. 전국 푸드뱅크의 경우, 2008년 10월의 기부물품은 작년 같은 달 대비 11%가 줄었다고 한다. 더욱이 급식을 보조하는 자원봉사자도 줄어들어, 인건비 추가 부담과 급식의 질 저하가 발생하고 있다. 보육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어떤 보육원에서는 후원금과 후원물품이 부쩍 줄어들어 두 차례 주던 간식이 한 차례로 줄어드는 날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한국어린이재단의 단체후원금도 지난해보다 13% 줄었다고 한다.
후원은 줄어들고 있지만 복지 수요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인천지역 노숙자 쉼터에서 무료 급식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올해 813명으로 지난해의 560명에 비해 45.2%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의정부시의 아동 일시보호소의 경우 지난해 179명이었지만 올해는 이미 204명을 기록했다. 이런 현상은 복지시설 간에 다소의 차이는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겨울이 되면 후원과 기부의 감소와 복지 수요 사이의 불균형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현재 복지시설 예산의 상당 부분은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후원사업 등을 통한 보충이 없으면 삭막한 운영이 불가피한 것이 현실이다.
경기 침체의 여파로 개인이나 기업의 사정이 나빠지고 있다. 라면이나 김밥이 잘 팔리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자기 생계도 꾸리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남의 사정을 좀 봐주라는 말을 꺼내기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민간의 후원 증가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정부가 먼저 나서야 한다. 어려운 시기에는 그동안 민간의 후원에 의존해 왔던 각종 복지사업의 부족분에 대하여 정부가 한시적으로 긴급 수혈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간단체에 대한 지원 확대는 민간 인프라를 활용해 경제 위기로 생기는 취약 계층에 대해 가장 기초적인 긴급 지원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부는 말 그대로 자발적인 것이다. 그래서 강제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기부가 잘 일어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기부와 관련한 조세제도도 대폭 정비해서 기부가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부가 이웃사랑 마음에만 기대서는 기부 행위는 한 번으로 곧 시들어버리기 쉽다. 기부가 기업이나 개인에게 도움이 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기부가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와야 한다. 기부자가 자신의 기부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기부를 촉진할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다. 돈뿐만 아니라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모금에서부터 전달에 이르기 까지 기부를 저해하는 요소가 없는지 꼼꼼히 챙겨보아야 한다.
“나눔에는 위안과 기쁨과 고마움이 따른다. 나눌 때 내 몫이 줄어드는가? 물론 아니다. 뿌듯하고 흐뭇한 그 마음이 복과 덕을 쌓는다. 당신에게 건강과 재능이 남아 있는 동안 그걸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어야 그 뜻이 우주에 도달한다”는 법정스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는 따뜻한 겨울이 우리 옆에 와 있다.
김용하/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김용하/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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