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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대화의 문을 열어 놓았다니 / 김근식

등록 2008-12-10 19:30

김근식/경남대 교수·정치학
김근식/경남대 교수·정치학
기고
예고된 대로 남북 관계가 급랭하고 있다. 개성관광이 문을 닫고 마지막 협력의 끈인 개성공단마저 상주인원 축소와 통행 통관 제한으로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다. 뱉어놓은 말과 요구가 너무도 단호한지라 남북 모두 퇴로를 찾기엔 힘들어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의 문을 닫은 건 북한이라며 억울해 한다. 대화의 문은 항상 열려 있고 언제든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북이 의도적으로 남북 관계를 파탄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의 공식 대북정책인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을 설명하는 통일부 책자만 보면 그 말이 맞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그간 행보를 보면 객관적으로는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이 정답임을 인정하지만 실제 북을 대하는 언행은 북한의 버릇을 고쳐놓기 전엔 남북 협력을 포기해도 좋다는 고집이 강하다. 머리로는 교류협력을 인정하지만 마음과 정서로는 관계중단을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항변하지만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가 북에 대해 공식적인 회담 제의를 했다는 소식을 필자는 들어본 적이 없다. 대통령이 미국 방문길에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를 제안했다고 하나 진정 대화제의를 할 량이면 돌아와 대북채널을 통해 정식으로 제안을 했어야 한다. 정식 회담이 성사되길 원한다면 이미 구성되어 있고 차기 회담까지 합의해 놓은 총리 회담과 부총리급 경제공동위 및 각급 실무회담의 틀을 통해 일자를 잡아 만날 것을 약속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10·4 선언 이후 가동되었던 남북 회담의 틀을 인정하지도 활용하지도 않았다.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할 용의가 있다고 수차례 밝힌 것은 사실이지만 매번 비핵개방 3000을 강조하면서 밝힌 원칙론이었고 따라서 그것은 북에 대한 공식회담 제의가 결코 아니었다. 식량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이명박 정부는 북이 먼저 지원요청을 하라고 조건을 달았다. 북이 군사회담 제의를 해오면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나갔다가 삐라 중단 요구에 시달리고 오는 게 공식 회담의 전부였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은 명확한 메시지와 일관된 시그널을 북에 주지 못했다. 10·4 선언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거기에 합의된 베이징 올림픽 공동응원단 모집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3통 문제 해결을 위한 회담도 먼저 제안하지 않았다. 경제적 부담이 10·4 선언 이행의 문제점으로 매번 주장되지만 큰 비용 없이 당장 할 수 있는 합의마저도 이명박 정부는 할 생각도 용의도 없었다. 언제든지 대화할 수 있다는 정부의 형식적 원칙론은 개성공단 근로자 기숙사 건설을 집단행동 운운하며 반대하는 대통령의 언급으로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진정성 있는 대화를 원한다는 8·15 경축사는 곧 이은 을지국무회의에서 북한의 대남 분열 시도를 경계하는 대통령의 발언에 묻히고 말았다. 6·15와 10·4 선언 등 기존 합의의 이행을 논의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면서도 정부는 아세안지역포럼 의장성명에서 10·4 선언이라는 단어를 삭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남북 관계 전면 중단을 경고한 북한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한 일이라곤 유엔에서 북한인권 결의안을 공동제안한 것과 자유 민주주의 아래 통일 원칙을 밝힌 게 전부였다. 이런 이명박 정부의 오락가락 행보는 겉으로는 대화 용의를 밝히지만 실제 속으로는 반북 대결과 대북 고립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남북 관계 중단을 실행에 옮긴 것은 북한이지만 그렇다고 이명박 정부가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교류협력을 간절히 원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제 솔직할 때가 되었다.

김근식/경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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