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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1958 보안법, 2008 마스크금지법 / 정태우

등록 2008-12-11 22:03

정태우  선임편집기자
정태우 선임편집기자
한겨레프리즘
일제 침략기는 식민지 근대화 시기로, 해방 이후 권위주의 시대는 건국과 성장의 주춧돌을 놓은 때로 미화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이 사회 구석구석까지 휘몰아치고 있다. 그들의 ‘역사 비틀기’는 학교에서 멀쩡히 잘 쓰던 역사교과서를 바꿔야 하는 수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보수세력의 ‘역사 우향우’ 속에 학문의 자유도, 교육의 자율도, “역사 교과서는 역사교사에게”라는 정당한 호소도 짓밟히고 있다.

뉴라이트 계열 단체 ‘교과서 포럼’이 만든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 기술은 이런 식이다. “대한민국은 분열과 혼란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폭력적으로 분열하거나, 국민의 기본권을 포함하여 민주주의 정치 제도 자체가 유보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자.

“낮에는 국군이 들어오고, 저녁에는 나가 버려. 저녁에는 나가 버리니까 또 빨치산들이 와갖고 한 달포를 있어. 나중에 국군들이 들어와서 빨치산들한테 밥해 줬다고 죽이지. 살려고, 살기 위해서 밥을 해준 건데.”(<굽은 어깨, 거칠어진 손>에 실린 부두 노동자 서동호씨의 6·25에 대한 기억)

“경찰한테 밉보이면 바로 죽었다카이. 그래서 ‘산골 대통령 온다’ 이카지 ‘경찰 온다’ 이런 얘기 안 했다.”(<역사비평> 올 가을호에 실린 노용석씨의 8·15에 대한 기억)

뉴라이트 쪽은 이런 사람들의 아픔과 희생은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어느 한구석 성찰도, 어떤 배려와 예의도 없다. 뉴라이트 쪽이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는 이승만 대통령은 법에 따른 통치를 어떻게 했나 살펴보러 국회도서관을 찾아갔다. 1958년 12월25일치 한 일간지에 실린 국회 풍경은 이렇다. 이승만 정권은 긴급각의를 열어 보안법안 등을 공포하기로 의결한다. 이날치 1면 제목을 훑어보자. “야당의원들 감금리에 국가보안법안 통과 강행. 난무하는 적나의(적나라한) 권력, 휩쓰는 폭력 밑에 아비규환. 끝까지 남았던 야당의원 비통한 ‘대한민국 만세’”. 2면엔 처참했던 순간의 스케치 기사가 실렸다. “공포의 감금 4시간20분. 동원된 경위만 3백명. 짐짝같이 끌려간 야당의원.” 이날 이 대통령의 성탄절 메시지는 이랬다. “유화 굴복은 평화 아니다.” 누가 법과 평화를 내세우며 민주주의를 짓밟았는지 파악하는 게 어렵지 않다.

서슬 퍼런 보안법은 이렇게 비민주적인 입법 과정을 거치며 확대 적용되었고, 50년 동안 8천여명의 피해자를 양산해 오고 있다. 박정희 정권 때 만들어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어땠을까. <조선일보>는 1963년 1월4일치 3면에 그 내용을 실었는데, 제목은 이렇다. “옥외는 해 있을 때만. 특정장소 근처서 꼼짝 못하고” 집시법이 박 정권의 통치에 어떤 구실을 했는지는 그해 9월10일치 신문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정부는 “선거기간 중 각종 연설회서 정부 비방을 할 수 없고 5·16에 대한 부인도 해선 안 된다”며 이를 어길 때에는 “집시법 외에 모든 법률을 적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1950∼60년대 ‘굴절된 법치’와 최근 한나라당 의원들이 발의한, 마스크 착용 금지 등 집회와 시위를 제한하는 법률 개정안은 너무 닮았다. 오늘 우리 시대의 표현의 자유,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옥죄고 있는 법제도가 어디에서 비롯되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깨닫게 한다. 성찰 없는 역사관은 결국 권위주의 통치의 지렛대가 될 뿐이다. 언제까지 과거 권력자를 미화하며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옥죌 셈인가.


정태우 선임편집기자windage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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