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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또 하나의 불씨, 국립현대사박물관 / 박찬승

등록 2008-12-11 22:14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
기고
작금의 역사 교과서 파동은 정부의 특정 교과서에 대한 수정 압력, 교육청의 역사 교과서 채택 변경 압력, 우익 인사들의 학교 현장에서의 한국 현대사 특강 등으로 이어지면서 그 끝을 헤아리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또하나의 불씨가 마련되고 있으니 그것은 정부의 한국현대사 박물관 건립계획이다.

정부는 지난 8월 이른바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서 ‘국립 현대사 박물관’을 현재의 문화부 건물터, 즉 경복궁 바로 앞의 세종로에 건립하겠다고 발표하였다. 당시에는 ‘건국 60주년’이라는 용어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여 현대사 박물관 문제는 그리 주목받지 못하였다. 다만 몇몇 역사 관련 학회의 성명서에서 이를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명한 일이 있었다. 그런 가운데 정부는 이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이번 정기국회에 ‘국립 현대사 박물관 건립사업 준비예산’으로 20억원의 예산안을 제출하였다.

얼마 전 신문 보도를 보니 야당에서는 현대사 박물관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12월5일 여당과 야당은 이 예산 가운데 기본계획 수립비(4억6천만원)와 건립준비단 운영비(4억4천만원)만 인정하고 11억원은 깎기로 합의했다고 언론은 전한다.

국회의 이런 움직임은 앞으로 커다란 정치·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킬 불씨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명박 정부의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인식은 경제발전 중시, 민주화 운동 경시, 남북대화 무시 등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역사관은 그동안 한국 사회의 극우보수 단체와 뉴라이트 단체들이 주장해 온 것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 예산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현대사 박물관 건립준비단이 출범하게 될 터인데, 그동안의 경과로 볼 때 아마도 이들 보수단체 인사들을 중심으로 준비단이 구성되지 않을까 여겨진다. 그렇게 되면 현대사 박물관은 그들의 보수적 역사관 위에서 세워질 것이다. 아마도 이승만·박정희 두 대통령을 찬양하는 전시물들을 중심으로 하는 박물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즉 이름은 ‘국립 현대사 박물관’이지만 사실상 ‘이승만·박정희기념관’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주 국회에서 예산이 통과되고, 내년 초에 건립준비단이 구성되는 단계에 들어가면 현대사 박물관을 둘러싼 논란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이는 또하나의 정치·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는 한국 현대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커다란 차이가 있는 사회집단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정부는 현대사 박물관으로 또하나의 논란거리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설사 박물관을 짓는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보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시 내용을 교체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고, 그때마다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국회는 우선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정부는 현대사 박물관 계획을 백지화해야 한다.

경복궁 바로 앞 세종로는 서울,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의 가장 중심적인 거리다. 특히 문화부와 미국대사관 자리는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앞으로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서울 시민과 국민들의 여론을 수렴해서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그런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고 한국 현대사 박물관을 이곳에 지으려 하고 있다. 이 공간은 그런 정치색 짙은 현대사 박물관보다는 국립 현대미술관 분관과 같은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런던 트래펄가 광장의 내셔널갤러리, 파리의 퐁피두센터와 같은 건물을 이곳에 짓는다면, 세종로는 과거의 정치색 짙었던 거리에서 문화의 거리, 서울의 관광명소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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