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신 고려대 글로벌리걸클리닉 책임교수
기고
사고는 항상 일어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대비책이다. 하지만 정확히 1년 전, 기름유출사고 피해자들이 보상받을 권리가 법으로 한정되어 있고 더구나 그 한도가 피해 규모에 비해 너무 적은 약 3천억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무척 놀랐다.
더욱이 2005년에 정부가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 보상한도를 높이는 추가기금협약에 가입하였다면 그 한도가 1조원 이상이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 또 정부는 정유사 부담을 이유로 그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그 부담이 고작 1년에 2억원 정도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국민 전체가 이등시민이 된 듯한 모욕을 느꼈다.(기존 유류오염보상기금 협약이든 추가기금협약이든 사고 발생 시 각국의 분담금은 사고가 났을 때 총피해액수와 회원국의 해상운송 유류 수입량에 비례하여 정해지고 이는 각 나라의 정유사들이 지급한다.)
결국 정부, 피해자, 가해자들이 조용히 무릎을 맞대고 환경과 건강을 위해 지식과 역량 그리고 노하우를 모아야 할 때에 피해자들은 대정부·대삼성 시위를 벌여야 했고, 정부와 가해자들은 책임 회피에 급급하여 적극적인 복구 및 보호활동은 때를 놓치고 말았다.
1주년이 지난 지금 정부는 아직도 추가기금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해양운송 유류 수령량이 유류오염보상기금 가입국 중 4위다. 세계 1위에서 11위 사이의 나라 중에서 선진국들은 거의 모두 추가기금협약에 가입하였다. 또 지금까지의 기름유출 1톤당 평균 피해액수를 산정해 보면 우리나라는 5300만원으로 세계 평균의 3배다. 우리나라가 관광수산자원을 집약적으로 개발·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우리나라 정유사들은 기존 유류오염보상기금 협약 아래서도 약 600억원의 분담금을 냈지만 우리나라 어민들은 약 900억원의 피해보상을 받았을 뿐이다. 또 지난 10년간 전세계 기름유출사고 26건 중 3분의 1에 가까운 8건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 게다가 많은 나라에서 기름유출사고를 막고자 선체가 두 겹으로 된 이중선체를 이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초대형 유조선 중 사고 위험이 높은 단일선체 비율(태안 사고 선박도 단일선체)이 전체의 60% 가량을 차지한다. 이는 세계 평균의 갑절을 넘는 수준이다. 정유사들이 운송비를 아끼려고 이중선체를 선호하지 않아 이런 결과를 빚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기름유출사고가 날 가능성도 높지만 사고가 일어나면 피해액수가 큰데도 가입을 하지 않는 것이다. 국익에 반하는 선택이다.
그럼에도 국토해양부는 국정감사 기간에 위의 모든 통계들은 빠뜨리고 “1조원 규모의 사고 발생 시 추가기금협약상의 우리나라 분담금이, 3천억원 규모 사고 발생 시 기존 협약상의 분담금의 8배다”라는 수치만을 제출하였다. 이는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사고 규모가 커지고 협약 가입국이 줄어들면(추가기금협약은 주로 원유 수입량이 많은 나라들만 가입했다) 당연히 각 나라의 분담금은 늘어난다. 이 수치는 발생 가능성이 극히 낮은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고는 3천억원 이하 수준의 사고들로서 기존 협약을 통해 처리된다. 이 경우 추가기금협약 아래서의 분담금 갹출은 없다.
국토해양부는 가입 타당성에 대해 그 수혜자들인 국민의 의견은 듣지 않고 정유사들과의 간담회 및 공청회만 진행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우리를 다시 세계의 이등시민으로 만들려는가?
박경신 고려대 글로벌리걸클리닉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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