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시론
미디어의 공공성을 보장할 마지막 보루마저 무너질 판이다. 최근 한나라당이 발표한 미디어 관련법 개정안들은 언론의 다양성이 민주주의의 기초이자 한국 헌법정신의 바탕이라는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이미 일간지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소수 신문사업자들이 방송 부문, 특히 지상파 방송까지 손아귀에 틀어쥘 수 있게 했다. 언죽번죽 몽니 부리는 한나라당 법안은 대기업들로 하여금 지상파 방송을 직접 쥐락펴락하게도 한다.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언론의 다양성과 미디어의 공공성은 멸절되고 표현의 자유가 숨쉴 공간도 말라 비틀어질 전망이다.
미디어법 개정안을 보면, 신문은 지상파 방송의 20%, 보도전문과 종합편성 채널의 49%까지 주식 또는 지분의 소유가 가능하게 했다. 공영방송인 <문화방송>과 <한국방송> 2채널을 사영화해서 이를 신문사와 대기업에 팔아넘길 것이라는 항간에 떠돌던 시나리오대로다. 발의된 개정법안들은 그 첫 단계로서 신문사와 대기업의 지상파 소유를 보장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현재 1공영 다민영을 뼈대로 하는 ‘공영방송법안’을 손질 중이라는데, 가상 시나리오의 두 번째 단계에 해당된다.
모든 대기업의 방송 진입을 허용하고 신문·방송 겸영 금지 조항을 없앤다면 대기업과 손잡은 조선·중앙·동아일보의 ‘일보 방송’이 가능할 테다. 방송 진출을 꿈꿔 온 큰 신문들의 친정부적 보도에 대해 권력이 지상파 진출 보장으로 화답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그동안 조·중·동은 불공정한 거래로 판매시장의 질서를 흐트러뜨리고 왜곡과 편파 보도로 정치여론 시장을 오염시켰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런 신문권력과 정치권력의 쌍끌이 협력 시스템이 방송 영역까지 이어지면 조중동식 여론몰이 작업은 거침이 없을 것이다. 충직한 권력보호견이 방송 부문에서도 탄생할까봐 우려스럽다.
대기업에 방송시장을 송두리째 개방한 것은 그악스럽기 짝이 없다. 대기업이 보도전문 채널과 지상파방송 채널을 소유한다면, 언론의 환경감시 기능이 통째로 사라져 버릴 가능성도 있다. 재벌 소유였던 한국의 신문들이 모기업의 비리에 침묵했던 발김쟁이 같은 양태를 떠올려 본다면 ‘재벌 방송’이 기업 비리, 특히 모기업 비리를 어떻게 다룰지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부정과 비리의 조짐을 보고 사납게 짖어야 할 공익 감시견의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 독점 체제를 해체하고 민영 미디어렙을 신설하라는 헌법재판소 명령에 더해 한나라당 방송법 개정안은 새로 지상파방송이 가상광고(스포츠 중계 도중 화면에만 광고가 보이게 하는 기법)와 간접광고를 할 수 있도록 해 심각한 문제가 예상된다. 프로그램을 자르고 광고하는 중간광고와 방송사가 광고를 자율편성하는 ‘광고 총량제’까지 관철시켜 버린다면 방송의 광고화·상업화는 불 보듯 뻔해질 터다.
이처럼 여당 법안은 자유로워야 할 개개인의 입을 틀어막는 한편, 미디어 사업자는 겁줘서 옥죄는 통제 구조를 노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에다 사이버 모욕죄를 신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당 의원들은 형법 개정안까지 발의하였다. 이에 더해 9년 이하의 징역을 살릴 수 있는 사이버 명예훼손죄까지 추가하였다. 방송사업자에 대해 광고를 중단시키거나 허가·승인을 받은 유효기간을 단축시켜 버리는 방법도 개정안에 담았다. 짖는 기능이 거세된 방송은 돈밭에서 굴러라, 말과 글로 지배권력에 덤비진 말라. 한나라당 미디어관련 법안들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경고 메시지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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