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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복면착용 집회·시위는 범죄라고? / 조국

등록 2008-12-16 20:44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시론
제18대 국회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제출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법률안 중 성윤환, 신지호, 이종혁 의원이 각기 대표발의한 것을 보면, 집회·시위의 주최자 및 참가자가 신원 확인을 어렵게 하는 가면·복면·마스크 등의 도구를 “소지·휴대·착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그러나 이런 집시법 개정법안은 첫째, 복면 착용 집회·시위에 대한 몰이해나 편견을 기초로 하고 있다. 예컨대 이상의 법안을 따르게 되면 동성애자나 성매매여성 등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가 자신의 권익을 주장하는 집회·시위를 벌일 때 자신의 신원을 숨기기 위하여 얼굴을 가리면 처벌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자주 사용되는 시위 양식인 비폭력 ‘침묵시위’도 마스크를 쓰고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처벌 대상이 된다. 또한 반전 집회·시위에서 해골 마스크를 쓰거나 비판의 대상이 되는 공적 인물을 표현하는 가면을 쓰고 집회·시위에 참석하는 경우도 처벌 대상이 된다.

스키용 마스크류의 복면을 쓴 집회·시위 참가자를 바로 과격폭력분자로 연결시키는 것도 문제다. 스키용 마스크는 혹한에 야외 집회·시위를 벌일 때 사용될 수도 있고, 집회·시위 참가자의 강력한 결의를 드러내는 표현수단일 수도 있다. 예컨대 2006년 경남 밀양시 단장면 감물리의 생수공장 허가에 반대하면서 마을 주민들은 눈과 코만 드러낸 복면을 쓰고 시위를 벌였지만, 이 주민들을 과격폭력분자로 규정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둘째, 2003년 헌법재판소가 집회의 자유 보장 내용을 설시하면서, “참가자는 참가의 형태와 정도, 복장을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다”고 밝혔던바, 상기 법안은 이런 헌재의 결정에도 반한다.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복면집회·시위 금지의 부당성을 공론화하기 위하여 일부러 복면을 착용하고 평화적인 집회·시위를 벌이고서 재판 과정에서 이 조항의 위헌을 다투는 일이 예상된다.

셋째, 형법 이론으로 볼 때 복면 등을 착용하는 것은 물론 소지·휴대하는 것만으로 바로 범죄가 된다는 것은 ‘과잉범죄화’ 그 자체이다. 현행 집시법이 폭력적 집회·시위와 그 선전·선동, 금지된 옥외집회·시위 등을 이미 처벌하고 있으므로 복면 소지·휴대·착용 자체를 처벌할 필요성은 적다.

넷째,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미국 등에서 복면집회·시위를 금지하는 입법례를 발견할 수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도한 규제로 불법 집회·시위를 양산하는 우리 집시법과는 달리, 이들 나라에서는 집회·시위의 자유가 훨씬 넓게 보장되며 이를 전제로 복면집회·시위를 제한적으로 금지하며, 실제 복면집회·시위의 처벌은 드물게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복면집회·시위 금지 법규는 주로 인종차별적 범죄로 악명 높은 케이케이케이(KKK)단의 집단행동을 규제하기 위하여 만들어졌으며, 여러 주법원은 복면집회·시위를 금지하는 법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또는 그 문언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위헌결정을 내린 바 있다.

요컨대 복면집회·시위를 처벌하는 집시법 개정안은 집회·시위의 자유가 정치적 반대자나 사회·경제적 약자의 의사표현 수단이라는 점을 몰각하고 있고, “복면착용=불법폭력”이라는 도식에 사로잡혀 복면이 다양한 의사표현의 방식임을 외면하고 있기에 즉각 폐기되어야 한다. 집회·시위에 대한 위헌적이고 과도한 금지·규제를 도입하려는 이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불법’ 집회·시위와 이에 대한 강경진압이 격돌하는 악순환은 오히려 확대재생산될 것이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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