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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잘못된 베팅일까? / 강태호

등록 2008-12-18 20:09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한겨레프리즘
지난 대선이 19일이었으니 이명박 당선자를 보게 된 게 꼭 1년 전이다. 유감스럽게도 지난 1년 남북관계는 뒷걸음질만 하고, 가다서다 하면서도 진전을 보인 북핵도 2단계 불능화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반토막이니 다 망할 지경이니 하는 말이 경제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 대한 이라크 기자의 ‘신발 투척’ 뉴스에 달린 수많은 댓글 가운덴 이런 내용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라디오로 합니다.” 꼭 누구 탓으로만 돌릴 일은 아니지만 그 책임에서만큼은 대통령의 몫이 가장 크다.

얼마 전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정례브리핑에서 북이 시료채취를 보장하는 검증의정서에 합의하지 않고 다음 미국 행정부로 미루려 한다면 그것은 “베팅을 잘못하는 거로 본다”고 말했다. 베팅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이 정부는 베팅을 하려는 생각이나 했는지 묻고 싶다. 식량지원도 그렇고 개성공단 숙소지원을 비롯해 공단 입출입을 원활히하도록 지원하기로 한 남북 군부대 사이 통신 자재·장비도 주겠다고 했다가는 시기를 놓쳤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육로통행 제한의 빌미를 안기고 말았다. 그러고선 주겠다고 했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도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 원칙만 내세우다 관광은 중단되고 이제 원칙은 형해화됐다.

남북관계는 바로잡아야 하고 원칙은 견지돼야 한다는 말은 그르지 않다. 그러나 어떻게 할 것이냐가 없으면 그건 자기 변호의 옹색한 논리가 될 뿐이다. 핵과 남북관계를 연계시키고 태생적 보수 이데올로기의 잣대로 북한의 태도를 뜯어고치겠다는 자세를 보이는 한 현실은 바뀌지 않은 채 나는 옳고 너는 나쁘다는 이분법만 남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나서서 남북대화의 전면 재개를 거듭 밝힌 건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을 바꾸려는 의지가 실린 베팅은 없었다.

물론 베팅을 해도 잘못하면 문제다. 북한이 보기에 2007 남북 정상선언은 불과 두 달여 뒤 이명박 대통령 당선으로 뒤집혔다. 결과를 놓고 보면 북한으로선 잘못된 베팅이 된 셈이다. 임기를 몇 달 앞둔 정부와 약속을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앞서 클린턴 전 대통령 때도 경험한 것이다. 사실 시료채취 합의 거부로 북한이 잃을 건 별로 없다. 한·미·일이 에너지 지원 중단을 검토한다지만 다음 순서인 러시아·중국이 응할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에너지 지원이 중단되면 불능화도 중단된다. 미국 국무부가 테러지원국 해제 재지정을 언급했지만 스스로 철회한 데서 알 수 있듯 별 대책이 없다. 반면 시료채취는 중요한 협상 카드다. 6자 회담 수석대표인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말로, 북한은 지금 단계에서 시료채취를 거부한 이유로 “북한의 핵능력을 모두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 안보와 주권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돼 있다. 또 지금 시료채취에 합의하면 2단계 불능화가 마무리된 북핵은 오바마 새 정부한테 적어도 내년 봄까지는 시급한 현안이 안 된다.

부시 대북정책의 설계자였던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은 2003년 첫 6자 회담을 앞두고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포악한 독재라고 비난하며 대화를 반대하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여러가지로 묘사될 수 있겠지만 지난 몇 해 약한 패를 쥐고도 게임을 매우 잘해 왔다. 그는 빈틈없는 인물이다.” 북한식 셈법으로 보면 떠나는 그래서 무기력한 부시 대통령에게 ‘선물’을 줄 이유가 별로 없는 것이다. 시료채취 거부는 오바마와의 본격 협상을 위한 북한식 베팅일 수 있다.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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