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영무 논설위원
아침햇발
‘내년 성장률을 정부가 3%로 낮춰 잡았다’는 뉴스를 보고 동네 미장원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바지런하고 척척 장단을 잘 맞춰 이 미장원만큼은 경기 무풍지대다. 아주머니는 이명박 대통령의 골수 지지파다.
“어떻게 3%를 한다는 거죠? 저걸 누가 믿겠어요. 솔직히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고 해야지.” 그러곤 덧붙였다. “책상에 앉아 있다 보니 현실을 모르는 것 같아요. 강만수 장관이 전철을 타고 30분만 시민들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올 텐데 ….”
수치를 낮췄지만 정부는 ‘전망이 아니라 목표’라며 성장률 끌어올리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성장률을 높이면 실업과 빈곤의 해일을 피해갈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내년 세계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거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상황은 좋지 않다. 3% 성장은 건설 투자와 부동산 경기 부양에 과녁을 맞춘 것으로,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세계경제가 급속히 안정돼야 아귀가 맞는다. 세계경제 침체가 지속되고 실업 대란이 먼저 닥치면 대책이 없다. 실업과 빈곤의 해일이 덮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은 구명복도 구명보트도 없이 생사 다툼을 벌여야 한다.
정부는 요행수에 베팅하는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다. 전체 노동인구 중 정규직이 3분의 1에 불과하고 비정규직과 자영업이 각각 3분의 1을 차지하는 우리에게 경제위기가 몰아닥치면 어떤 결과가 올지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에서, 지금 상황이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소득에 영향을 끼친다면 내년에는 생계 유지가 어려운 빈곤층이 2006년 10.6%의 두 배인 20.9%로 급증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 가운데 사회적 보장이나 보험을 받는 사람은 3.9% 정도에 그쳐 17%는 사각지대에 놓인다. 1천만 가까운 국민이 아무런 사회적 도움 없이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으로 견뎌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경고다.
외환위기는 우리 사회에 양극화라는 상처를 남겼다. 그 상처가 이번에 덧나면 노동시장에서조차 밀려나고 사회에서도 배제된 최하층의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할 것이다. 노숙자 또는 그와 다름없는 처지의 사람들이다. 외환위기 충격은 멀쩡한 사람들을 시장 밖으로 밀어냈고 사회 밖으로 내팽개쳤다. 지금의 우리 현실에서 그런 일은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다.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같은 저소득층이 연쇄적으로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되지만 이들을 보호할 장치가 거의 없다.
예고된 위기는 위기가 아니다. 알고도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는 게 진짜 위기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정부도 민간도 바짝 긴장해 선제적 대응에 마음이 바빴다. 지금은 병이 더 중한데도 의료진은 낙관론만 되풀이하고 정부 어디에도 긴장감이 없다. 새해 예산에서 복지 지출을 찔끔 늘렸지만 전대미문의 위기 앞에 초라하기 짝이 없다. 최하층으로 한번 전락하면 재기가 거의 불가능하므로 사전에 예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외면하고 있다.
1992년 국민당을 만들어 대선판에 뛰어든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 핵심 인사들은 지지율이 10%대에서 고착됐지만 놀랍게도 막판까지 당선을 확신했다. 첫째 여론조사가 바닥 여론을 놓치고 있으며 서민은 국민당 편이라는 믿음, 둘째 모두 불가능하다고 한 일도 정 명예회장이 하면 된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성장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과신과 집착이 쏙 빼닮았다. 민주성과 합리성의 결여가 맹신을 낳는다. 개인이 노름을 하면 가정이 불행해지지만 정부가 도박을 하면 국민이 희생을 치러야 한다. 그것은 정부의 실패요 정권이 걱정하는 체제불안을 낳을 것이다.
정영무 논설위원young@hani.co.kr
정영무 논설위원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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