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웅/제7대독립기념관장
시론
이명박 정부는 집권 10개월 동안 역사를 거꾸로 돌렸다. 국회 날치기, 교과서 왜곡, 언론장악, 감사원 등 권력기구의 사유화, 국가인권위원회와 과거사청산위원회의 축소통합 압력에 이르기까지 지난 10년의 민주화 성과물을 물거품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가운데 “일장기가 내려진 자리에 성조기가 올라갔다” 는 내용 등의 사실 기술이 좌편향이라는 이유로, 더욱이 금성사 역사교과서는 저자 동의도 없이 강제로 수정하기로 결정했다.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과 보수세력이 국가권력을 통해 자신들의 역사관을 일반 출판물이 아닌 교과서로 개편하려는 것은 국가폭력이고 역사왜곡이다. 역사 편찬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역신과 적자, 음군과 난주를 서술하면서 그들의 행위를 직서하고 그들의 행위를 숨기지 않는 것”이라는 사마천의 <사기> 직서편에 나오는 이 말은 역사(교과서) 편찬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친다. 문명화된 사회라면 최소한 교과서만큼은 이념적 당파성을 접고 역사학자의 양식에 맡기는 것이 상식이다.
곡필을 찬핵(鑽核)이라 한다. 열매의 씨를 뚫어서 죽이는 것, 곧 사람의 정신, 얼을 죽이는 짓이다. 우리나라 지식인·언론인들의 역사왜곡과 곡필의 역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친일파들의 ‘내선일체’ ‘귀축영미론’, 이승만 시대 만송족의 ‘국부 이승만론’, 박정희 시대 ‘유신족’ 의 ‘긴조(긴급조치) 찬양론’, 전두환 시대 땡전뉴스족의 ‘광주폭도론’, 이명박 시대 뉴라이트 계열과 조중동에 이르기까지 곡필족들은 뿌리와 줄기가 겹치기도 하고 새로 충원받기도 하면서 이 나라 정신사를 먹칠해 왔다.
히틀러 시대 역사가들은 대부분 ‘외압’ 이 아니라 ‘소신’ 에 따라 나치에 협력했다고 한다.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대로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던 자”들이었다. ‘악의 평범성’이 히틀러의 만행을 가져온 것이다. 나치 선전상 괴벨스는 양서에 금서 딱지를 붙혀 불태우면서 “이 불꽃은 단지 지나간 시대의 마지막을 밝혀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환하게 밝힐 것이다”라고 호언했다. 하지만 그의 종말은 비참했다. 21세기 한국에서는 금서 딱지가 붙고 있다.
붉은색 안경을 끼고 앉아서 걸핏하면 친북좌파·용공·빨갱이·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회색분자 어쩌구 하면서 비판자들에게 붉은색칠을 해대는 곡필 언론인·지식인들은 괴벨스의 종말에서 역사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보수 쪽의 두 신문은 전두환 긍정보도 사설 98%, 노무현 부정보도 사설 89%, 전·노·와이에스 사설 언급이 총 50건 미만인데 노무현 언급사설은 276건이었다. 노무현의 임기가 1년 남은 2007년 2월에 실시한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의 조사결과다. 남은 1년이 가장 심했으니 이 통계수치는 훨씬 높아질 것이다. ‘비판언론’ 의 허구성과 정파성, 언론의 기능아닌 ‘언롱’(言弄) 의 모습을 보게 된다.
어느 측면에서는 이명박 정권의 역사왜곡이나 권위주의 회귀보다 보수신문들과 땡전뉴스로 돌아서는 방송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언론의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선진화는커녕 정상적인 민주주의도 존립하기 어렵다. 보수신문이 이명박 정권과 유착된 것은 이념적 동질성도 있겠지만 공중파 방송을 소유하려는 ‘거래’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안다. 이들이 방송까지 장악한다면 여론의 다양성을 본질로 하는 민주주의는 끝장이다. 국민이 막아야 한다.
이명박 정권이 불행하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민주주의 이념과 공화정의 정신이 회복되어야 하지만, 떠받들고 있는 뉴라이트 계열 지식인들과 보수언론의 공론정신과 역사의식의 회복이 시급하다.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반드시 역사의 보복을 받게 된다.
김삼웅/제7대독립기념관장
김삼웅/제7대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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