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
아침햇발
핵 정책은 미국 외교·안보 정책의 주요한 축이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 또한 그 틀 안에서 이뤄진다.
곧 들어설 버락 오바마 정부의 핵 정책 출발점은 두 가지 면에서 조지 부시 정부와 다르다. 우선 냉전 종식 이후 미국 핵 정책의 실패를 가감없이 인정한다. 북한이 추출한 30여㎏의 플루토늄이 문제가 되지만, 지구촌 40여개국이 갖고 있는 핵물질은 무려 3천톤이나 된다. 핵무기 25만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게다가 미국과 러시아에는 여전히 수만개의 핵무기가 있고, 북한·이란 등 핵보유국에 진입하려는 나라가 잇따른다. 세계는 지금 제2의 핵 확산기에 있다.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위협이 핵을 이용한 테러인데, 그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이제까지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미국은 그간 포괄적 핵 정책 차원에서 이런 위기를 바라보는 노력을 게을리했다.
아울러 오바마 진영은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목표에 어느 정권보다 적극적이다. 1968년 조인된 핵확산금지조약은 핵무기 경쟁의 종식과 핵 폐기 의무를 규정한다. 많은 미국 대통령 후보들이 핵무기 폐기에 동의했으나 당선된 뒤에는 기존 정책을 바꾸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았다. 이제는 미국이 먼저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졌다.
조지 슐츠 및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 샘 넌 전 상원 군사위원장 등은 미국의 주도적 핵 폐기 노력을 촉구하는 공동기고문을 지난해와 올해 초 연이어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었다. 이 글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을 포함해 살아 있는 전 국무장관·국방장관·국가안보보좌관의 3분의 2 이상이 지지 뜻을 밝혔다. ‘미국의 전략 태세에 관한 의회 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핵 정책 관련 중간보고서도 미국이 핵무기 감축과 핵실험 금지 등에서 앞장설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다.
새 핵 정책은 핵무기 보유 목적이 다른 나라의 핵무기 사용 억제에만 있음을 분명히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냉전 시기 핵 전략인 상호확정파괴(MAD)는 말 그대로 ‘미친’(mad) 것임을 선언하라는 얘기다. 이 경우 미국은 현재 1만개 이상인 핵무기를 수백~1천개까지 줄일 수 있다. 메릴랜드대학의 세계공공여론 프로젝트 등이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2012년까지 핵무기를 2천개까지 줄이는 데 미국인의 88%와 러시아인의 65%가, 400개 이하로 줄이는 데는 각각 59%와 53%가 찬성했다.
다음 단계는 핵무기·핵물질에 대한 국제 관리체제를 강화하고, 궁극적 폐기를 위한 외교 노력을 배가하는 것이다. 내년 가을 유엔 총회에서 있을 반테러전략 재검토와 2010년 봄의 핵확산금지조약 재검토 회의는 이런 노력에서 분기점을 이룰 것이다. 특히 5년마다 열리는 핵확산금지조약 회의는 핵 없는 세계로 향하는 새 비전을 확정하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와 이란 핵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새 핵 정책의 성패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바마 정부는 핵 문제와 북한의 안보위협 우려를 포괄적으로 풀기 위한 노력을 임기 초반에 집중적으로 할 것이다. 고위급 직접협상은 이런 맥락 속에 있다. 이에 발맞춰 핵보유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노력도 활발해질 것이다. 6자 회담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 환경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는 구도다.
우리나라가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는 이명박 정부의 인식과 행동 역량에 달렸다. 근원적 대북 불신을 넘어서지 못하거나 미국 핵 정책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면 설 자리가 없다.
김지석 논설위원jkim@hani.co.kr
김지석 논설위원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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