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용태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
기고
공교육을 살리려면 교사가 바로 서야 한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갈수록 ‘교사 때리기’를 대중 스포츠처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전국학력진단평가(일제고사)와 관련해 파면된 해직교사를 두고 자기 자식은 시험을 보게 하고 남의 자식은 못 보게 한 야비한 교사라는 언론의 왜곡보도가 그 전형이다.
한국교총은 초등학생의 일제고사에 반대하던 종래의 주장을 바꾸어 10여년 만의 부활을 지지하면서 학력 편차를 확인하여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하다고 한다. 이런 목적에 따라 사후 조처가 실행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중·고교 일제고사는 줄곧 시행해 왔음에도 지역간 학력 격차는 줄어들지 않는다. 특목고나 명문대 합격자 수의 격차는 다 아는 대로다. 2008년 한 해 이른바 부적응과 비행으로 학업을 중단한 고교생 수를 보아도 서울 성북구가 강남의 다섯 배나 될 정도로 그 격차는 크다. 이는 일제고사가 사교육 역량의 차이를 확인하는 데서 그쳤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이를 직시한다면 교사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일제고사와 체험학습 중 선택 기회를 준 것은 본연의 교육행위에 속한다. 그럼에도 사후조처의 책임을 져야 할 교육당국이 교사를 파면·해임시킨 것은 책임전가일 뿐이다. 12월23일 일제고사에서는 전국의 일만 오천여 학생이 불참하거나 체험학습을 신청하였다. 만일 이들을 모두 결석으로 처리한다면 거대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우리의 학부모는 학생 개인의 내면을 살펴 깨우쳐 주지 못하는 획일적인 국가 교육과정을 거부하고 다른 선택을 하기 시작한 지 오래다.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선택한 것, 대안학교 지원자가 최근 들어 다섯 배 이상 급증한 것, 조기유학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 것은 모두 그런 욕구의 표현이다. 상관이 없는 듯한 이 세 가지 선택의 공통점을 나는 관료주의 거부라고 본다. 획일적 기준으로 일방적·형식적 통제를 일삼되 책임을 지지 않고, 교사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억압하는 행태를 피해 간 것이다.
교육 당국 스스로 교사는 전문직이라 말하지만, 실제로 교육의 전문성은 교사 중에서 시험으로 선발된 ‘교육 전문직’에 의해서 수행되고 교사는 그 지도를 따라야 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번의 교사 중징계도 그 지도를 따르지 않은 데 대한 처벌이다. 장학사와 학교장을 비롯한 교육행정 관료를 ‘교육 전문직’이라 하면 교사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둘을 분리한 이원구조는 교사의 전문성에 대한 원초적 모욕이다.
역사 교과서의 수정과 교체를 강요한 데서도 드러났듯이 지난 1년 동안 이명박 정부의 일방주의는 이 모욕의 구조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정부는 교사평가를 하지 않아서 공교육이 무너졌다며, 새해 업무보고에서 2010년부터 교사평가를 전면적으로 시행하겠다는 속도전 태세를 분명히 하였다. 교사평가는 필요하다. 그러나 교사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옥죄는 이 원초적 모욕 구조를 내버려둔 채라면 그것은 ‘교사 때리기’에서 ‘교사 죽이기’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일 뿐이다.
전세계 300만 독자에게 감동을 준 <가르칠 수 있는 용기>의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아무도 해결책을 모르는 난제의 희생양을 찾아 교사들이 그 방법을 모른다고 비난하는데, 그런 모욕 아래서는 아무리 예산을 증액하고 학교체계와 교과목을 개편해도 교육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고. 외부로부터 작동하는 권력과 달리 권위(authority)는 ‘저자’(author)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교사 자신이 교육행위의 주인(저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유용태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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