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한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기고
지난 연말과 올해 초 우리 국회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도대체 이 나라가 민주주의를 감당할 수 있는 나라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전대미문의 세계적 경제위기에 즈음하여, 미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국민의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해 비상한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는 와중에, 우리 정부와 여당이 모든 것을 바쳐 전력하고 있는 정책들이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전세계가 동시에 봉착한 이번 경제위기를 얼마나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극복하는가가 향후의 국가경쟁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대한 변수가 될 것이다. 그래서 미국을 위시한 서방의 모든 주요 국가들이 ‘단 1분도 허비할 겨를이 없이’ 경제회생을 위한 금융·재정·산업정책 차원에서 특단의 조처들을 쏟아내고 있다. 즉 이번 위기의 일차적 원인인 금융시스템의 재편과 함께, 금융경색 해소를 위한 제로금리 정책을 포함한 획기적인 유동성 공급 확대, 장기적인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산업인프라, 녹색산업의 기술기반, 정보인프라 구축 등에 천문학적 규모의 재정을 투입하고 주요 전략산업에 대한 초유의 긴급지원까지 제공하는 등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발빠른 대응을 보이고 있다.
한시가 급한 경제회생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감독을 해야 할 우리나라 국회는 기능이 마비되고 국가적 망신을 주도하는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일차적 원인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일방적 비준’이 이번 경제위기의 최대 돌파구라는 안이한 믿음에 집착하는 정부·여당의 태도이다.
지난 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대외적 탈출구도 막혀버린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면 통화·재정·산업정책을 아우르는 초유의 복합 처방이 필요한 상황이다. 초저금리 정책에도 여전히 막혀 있는 유동성 공급 채널을 뚫기 위한 기업 구조조정과 동반된 유동성 공급 확대 조처와, 장기적인 경제효율성 제고를 위한 초대형 재정투자 확대 조처 등이 초당적인 협조 아래 당장 추진되어야 한다.
정부·여당이 일방적인 비준을 추진하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한국 경제의 ‘요술방망이’가 아니다. 이 협정으로 미국은 평균 1.2% 실행관세를 철폐하고, 한국은 평균 7.2%의 실행관세를 철폐하게 된다. 한국의 일방적 시장개방에 가깝다.
정부·여당이 경제위기 극복책으로 내놓은 ‘4대강 정비’ 사업에 2009년 나라 전체 예산의 22%에 이르는 45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는 발표는 국민의 간담을 더욱 서늘하게 한다. 이런 천문학적인 재정투입이 토목건설업과 일용직 근로자들의 일시적 소득증대 효과 외에, 우리 경제의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렵다.
대통령은 우리나라에는 토목건설업 이외에도 산업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더더욱 우리의 최대 시장이자 최대 경쟁국인 중국의 위협적인 기술추격을 고려할 때, 기술집약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에서의 기술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가 우리 경제의 생존에 가장 절박한 정책과제임을 깨달아야 한다. 맹목적 재정투입 확대는 자원배분의 왜곡을 심화시킬 뿐이다. 과도기적인 사회안전망 구축과 함께, 우리 경제의 효율성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계획되었던 기술혁신 투자와 산업인프라 구축을 위해 천문학적인 재정투입을 해야 할 때다. 전대미문의 위기에서는 맹목적 성실성이 아니라, 위기 극복을 위한 결단과 함께 중장기적인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김영한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김영한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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