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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평화가 불편한 사람들에게 / 고병헌

등록 2009-01-09 19:18

고병헌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고병헌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시론
격세지감이다. 평화교육이라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물론, 서구 사회에서조차도 그리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한 영역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가 평화로울 때는 평화롭기에 평화교육에 대한 절실함이 그만큼 덜할 것이고, 사회적 긴장이 팽팽해지고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면 평화교육은 정치·사회적 갈등이 필요한 쪽으로부터 가장 먼저 공격을 받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화교육은 정규 교육과정에서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늘 찬밥 신세였는데, 역사교과서 문제로 한참 홍역을 앓고 있는 요즘 또다시 정부가 새 도덕교과서에서 평화교육 부분에 가위질을 하는 것을 보면 평화교육이 어느새 역사교육만큼이나 사회적 영향력이 강한 ‘위험한’ 교육영역으로 성장했는지 그 달라진 위상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동안 평화교육 전공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에 평화교육의 필요성을 알리고자 나름의 노력을 해 오면서 가끔은 힘에 부쳐 힘들어하곤 했는데 이번 정부의 가위질이 그 어느 것보다도 평화교육의 존재를 확실하게 드러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사태를 접하면서 일반 독자들 중에서 많은 분들이 평화교육이라는 용어를 처음 접하셨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참에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자면, 평화교육은 한마디로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가 평화로 충만한 것이 되도록 하는 데 필요한 능력과 품성, 자질과 태도 등을 길러주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관계의 범위와 대상은 다른 사람, 다른 집단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관계,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 그리고 자연과 우주와의 관계까지도 포함한다.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겠다고 하는 아홉 가지 핵심사업과 27개의 연계사업을 스스로 ‘녹색’이라고 포장했는데, 정부가 말하는 바로 그 ‘녹색’도 평화교육 핵심 주제 중의 하나다.

그래서 지금까지보다 더 적극적으로 권장해도 시원찮을 판에 뭐 때문에 가위질을 했을까? 들리는 말로는 ‘안보의식’에 대한 조바심 때문이라고 하던데, 그렇다면 그것은 교육에 대해 무지한 소치가 아닐까 싶다. 국가안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중요하다. 그것도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국방부가 있고, 외교부가 있고, 그리고 한때 폐쇄될 뻔했던 위기정보상황팀을 국가위기상황센터로 확대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교육은 지금보다 더 나은, 더 아름다운, 더 가치로운 삶과 세상에 대해서, 오로지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에서 평화교육은 단지 도덕교과서의 한 부분이 아니라 우리 교육의 근본적 이념이 되어야 한다.

평화교육의 내용은 본질적으로 그 사회의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으로 채워지는 법이다. 그래서 이번에 평화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의 가위질은 실제로는 우리 아이들의,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행복하고 아름다운 미래에 대해서 가위질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들이 깨달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미국의 마틴 루서 킹 흑인 목사가 암살된 직후, 만화평론가 빌 몰딘은 먼저 암살당했던 간디가 킹 목사를 천국으로 안내하고자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이렇게 덧붙였다. “암살자들의 희한한 점은 말이오, 킹 박사! 그들이 당신을 죽였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오.” 평화교육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미래에 대한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그런데 평화를 불편하고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아니 사실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을 진실은 교과서에 가위질을 한다고 해서 평화 충만한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꿈을 죽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고병헌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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