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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부시, 이스라엘, 이명박 / 김지석

등록 2009-01-15 20:01

김지석  논설위원
김지석 논설위원
아침햇발
1천명이 넘는 사망자 가운데 3분의 1이 어린이다. 부상자 수천명 중에는 40%가 넘는다. 의료센터와 구급차까지 폭격당해 치료받을 곳도 없다. 지난달 27일부터 이어진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은 가자지구를 생지옥으로 만들고 있다. 지구촌의 거센 비난은 쇠귀에 경 읽기다.

어디서 본 듯한 그림이다. 2003년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 때가 그랬다. 모두 반대하는 일방적 침공으로 수십만 민간인이 숨졌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 정권 교체에서 국가 재건으로 침공 목표를 바꿔 점령을 계속하고 있다. 이스라엘 역시 하마스 도발 억제에서 가자지구 점령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전쟁이라고 하면 보통 많은 병력과 군사장비가 넓은 전장에 늘어선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런 전쟁은 이미 사라졌다고 영국 군사전략가 루퍼트 스미스는 말한다.(<전쟁의 패러다임>)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에서 시작돼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진 대규모 정규군 위주의 ‘산업 전쟁’은 벌써부터 ‘민간 전쟁’으로 대체됐다. 1991년 걸프전 등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면 현대전은 모두 민간 전쟁이다.

민간 전쟁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거리와 집과 들 등 사람이 있는 모든 장소가 전쟁터가 된다. 전투 대상이 민간인인지 아닌지도 잘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서 자칫하면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다. 산업 전쟁 패러다임에 따라 편성된 군을 투입할 경우에는 더 그렇다. 그러고도 전쟁 목표는 거의 달성하지 못한다. 군사적으로 이기더라도 정치적으로 더 많이 잃기 때문이다. 이라크전과 이번 가자 침공이 좋은 본보기다.

부시 대통령과 이스라엘은 잘못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부시는 며칠 전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성급한 이라크 침공 ‘임무 완수’ 선언을 재임 중 가장 큰 잘못으로 꼽았다. 침공은 옳았으나 대국민 홍보에서 실패했다는 강변이다. 침공 명분으로 삼았던 대량살상 무기가 이라크에서 발견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그냥 ‘큰 실망’이라고 했다. 이스라엘 역시 지구촌이 다 비난하더라도 자기는 옳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독단과 힘을 믿을 뿐이다.

이런 태도는 이명박 정권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국회의원 수의 우세를 바탕으로 입법전쟁을 밀어붙이다가 잘 안 되니까 야당을 무력화하려고 국회폭력방지 특별법을 추진한다. 국민의 비판 목소리는 검찰과 경찰 등 공안기관이 나서 전방위적 봉쇄를 꾀한다. 역사 교과서를 정권 입맛에 맞게 뜯어고치고, 미래지향적 평화·통일 교육을 퇴행적 냉전 논리로 후퇴시킨다. 미숙한 환율 정책의 책임을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에게 묻는 데서는 뻔뻔스러움까지 느껴진다. 언론악법의 홍보가 부족했다고 공무원들을 다그치는 모습에서는 이라크 침공보다 홍보가 문제였다는 부시가 연상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박정희처럼 하려다 전두환처럼 되고 있다고 많은 이들이 지적한다. 박정희식 개발독재를 모델로 삼은 것부터 시대착오지만, 그마저도 개발은 온데간데없고 독재만 남았다는 뜻이다.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20%대에 불과하다. 곧 물러나는 부시와 비슷한 수치다. 부시 정부는 결국 버락 오바마 정부로 교체됐고, 이스라엘은 군사적 성패와는 별개로 고립을 피할 수 없다. 지금의 길을 그대로 간다면 이명박 정권 또한 더 큰 어려움에 부닥칠 것이다.

정치력이 요구되는 민간 전쟁에 무턱대고 군사력을 투입해서는 안 되듯이 산업화 시대의 마인드로 지금 상황을 헤쳐나갈 수는 없다. 길을 잘못 든 사람이 서둘다 보면 목적지에서 더 멀어지는 법이다. 진지한 반성이 반드시 필요한 때다.


김지석 논설위원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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