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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공허한 메아리로 남은 ‘부자 되세요’ / 정태우

등록 2009-01-22 19:32

정태우  선임편집기자
정태우 선임편집기자
한겨레프리즘
용산 철거민 참사로 희생된 고인들의 분향소 위치를 확인하러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어느 누리꾼이 올린 현장 사진이 눈길을 붙든다. 사진 속 시민이 들고 있는 팻말에 또렷이 적힌 “양극화로 몰아넣고 죽음으로 등떠밀고”라는 글귀는, 공권력의 과잉진압과 함께 이번 참사의 이면에 있는 원인을 말해 준다.

2002년 선보인 한 신용카드사의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는 미국발 경제위기가 밀려오기 전까지 새해 최고의 덕담으로 번져 갔다. 외환위기 터널을 갓 벗어난 사람들의 ‘잘살고 싶다’는 욕망에 불을 지폈던 셈인데, 이후 몇 해 집집마다 재테크 책이 꽂히고, 부동산-펀드-뉴타운으로 이어지는 대박열풍은 식을 줄 몰랐다. 이런 ‘부자 담론’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국민성공시대’로 증폭됐다. 그런데 그 덕담이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은 몇 해 동안 우리 삶은 정말 나아지긴 한 것일까?

1인당 국민소득은 2002년 1만1499, 2004년 1만4193, 2006년 1만8372달러로 증가세를 이어가다 2007년 처음으로 2만달러를 넘었으나, 현정부가 출범한 지난해엔 1만7800달러로 주저앉은 것으로 추정된다. 소득 불평등 척도인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 소득을 하위 20%로 나눈값)은 지난해 1분기 8.41로 2003년 이후 줄곧 악화돼 왔다.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의 보고서를 보면, 월 가구소득이 166만∼499만원인 중산층은 지난 10년 동안 10% 정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3%p는 상위층으로 오른 반면, 7%p는 빈곤층으로 추락했다. 1996년 68.5%를 차지했던 중산층은 2000년 61.9%, 2006년 58.5%, 2007년 58%로 줄었고, 빈곤층 비율은 96년 11.3%에서 2000년 15.7%, 2006년 17.9%, 2007년 18.3%로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부자 담론이 맹위를 떨쳤음에도 1인당 소득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고, 부익부 빈익빈은 더 깊어진 셈이다.

중국의 법가 사상가인 한비자는 “교묘한 속임수는 졸렬한 진실만 못한 법”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교묘하게 꾸며도 본색은 드러나기 마련임을 지적한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747 경제공약-주가 3000공약 등이 허황한 구호였음이 드러나는 데는 1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경제위기에 내몰린 서민들을 진심으로 지원할 대책을 찾긴커녕 시간이 지나면 곧 드러날 화려한 조어로 국민을 속이려 들고 있다.

정부는 올해 초 2012년까지 50조원을 들여 일자리 95만여개를 만든다는 ‘녹색 뉴딜’ 사업을 발표했다. 정부 주장대로 실현된다면 2012년 실업률은 ‘0’이 된다. 또한 토목건설 관련 사업에 ‘녹색 뉴딜’ 전체 사업의 78%가 배정된 것으로 드러나 ‘회색 뉴딜’이라는 비판과 함께 예산 집행의 적절성을 싸고도 논란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국민의 기본권을 위협하고 여론의 다양성을 뿌리째 흔들 수 있어 ’엠비(MB) 악법’이라고 평가받는 법안들까지 ‘엠비 약법’이라며 홍보하고 있으니, “혹세무민했다”며 미네르바를 구속한 검찰의 칼날은 정부·여당으로 향하는 게 맞을 성싶다.

행복이 뭘까 하는 물음에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만큼이나 다양한 답변이 나올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참담한 경제지표들이 쏟아지는 지금, 정부의 첫 임무는 행복의 최대치를 곧 쥐어 줄 것처럼 국민을 현혹시키는 게 아니라 불행의 경계선에 선 이들의 추락을 막는 일이다.


정태우 선임편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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