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장
시론
최근 여당의 언론 관련법, 특히 방송법 개정과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첨예한 논란과 대결이 펼쳐지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안정과 화합을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방송법을 비롯하여 언론 관련법들도 다른 법과 마찬가지로 필요하면 언제든지 개정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나라당의 언론 관련법 개정 움직임은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얼핏 보기에 그 이유는 내용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 여당의 언론법 개정에서 겉으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그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지상파 방송이나 종합편성채널 같은 종합적인 보도를 하는 방송을 재벌과 신문에 허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가 첨예한 논란과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한나라당과 이들 방송에 진출하고자 하는 신문들은 방송계의 독과점 해소와 방송 서비스의 다양성 증대 등과 같은 명분을 강조한다. 야당들과 방송계에서는 재벌과 거대 신문에 방송까지 줄 경우 여론이 소수의 언론에 장악되고 오늘날 거대 권력이 된 재벌을 견제할 수 없게 된다는 이유로 그 부당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논란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여야 대결의 진짜 이유는 아니다. 여야가 대결하는 진정한 이유는 법 개정안의 내용이 아니라 법 개정의 절차 때문이다. 불행히도, 여당의 이번 언론 관련법 개정 움직임은 민주적인 절차를 생략하고 있다. 우리 헌법이 채택하고 우리가 그 쟁취를 위해 많은 희생을 치른 민주주의는 무엇보다 절차를 존중하는 체제다. 특히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가 걸린 중대한 문제를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참여하여 진지하고 격렬한 논쟁과 토론을 벌이는 공론의 과정을 거쳐 도출된 합의에 근거해서 정책을 시행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치는 체제다.
지금 여당이 내놓은 방송법 등 언론 관련법 개정안은 우리나라 방송 구조를 포함하여 미디어 구조와 언론 자유의 정도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 정도의 큰 변화를 초래할 내용이라면 그 내용에 관하여 학계, 업계, 정계, 시청자 등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여 충분한 토론과 논의를 거쳐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미 1998년 현재의 방송 구조를 만들기 위해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방송개혁위원회’를 만들어 합의를 도출하고 그에 근거하여 방송법을 여야 합의로 개정한 바 있다. 영국에서는 방송 분야에서 중요한 정책이나 쟁점이 떠오를 때마다 조사연구위원회(지금까지 10여 차례)를 구성하여 활동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고 의회는 이에 기초하여 새로운 방송정책을 위한 입법을 행한다. 프랑스도 미테랑 대통령 때, 그리고 최근 방송 구조 개편을 위해 특별위원회를 구성한 바 있다. 구미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런 절차가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이렇게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정책을 시행할 때 이해당사자와 국민들이 납득하고 수용하게 된다. 따라서 이 문제로 사회에 심각한 갈등과 대립, 불평과 불만도 생기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이 문제는 국민간의 갈등과 대결만 조장하게 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내용보다도 절차가 더 중요하다. 절차가 무시되면 내용이 아무리 훌륭해도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그 경우 사람들은 그 내용을 승복하지 않을 수도 있고, 정부는 그 내용을 강요하기도 어렵다. 반면에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면 내용이 다소 미흡해도 그 내용을 승복할 수밖에 없고, 정부는 그 내용을 당당하게 강요할 수 있을 것이다.
이효성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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