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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이동걸과 연구원의 품격 / 정영무

등록 2009-02-02 20:48

 정영무 논설위원
정영무 논설위원
아침햇발
연구원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현 정부가 한갓 사치품 정도로 여긴다고 직격탄을 날린 이동걸 전 금융연구원장에 대해 이한구 전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노무현 정권 때 코드 맞춘 사람이라고 폄하했다. 그러나 이 원장은 참여정부 시절에도 소신에 어긋나는 정책에 대해서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으며 몸을 던지기도 했다. “서민과 약자를 배려하고, 기업을 움직이는 개인의 비리는 엄단한다는 전제 아래 기업이 맘대로 활동하도록 풀어주자는 차별화를 스스로 포기했다”고 참여정부에 대해 혹평한 것을 기억한다면, 이 전 의장의 비평은 한쪽 귀로 흘려도 될 법하다.

이 원장은 관변을 넘나들면서도 드물게 학자적 양심을 고수한 지식인이다. 그는 특정집단의 이익이 상식을 압도하고 그들만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리와 반칙을 정당화하는 현실에 맞서 온 합리적 개혁론자이다. 금융이 선진화되려면 원칙과 법치가 바로 서야 하며, 시장 원리에 따라 제대로 작동하는 금융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해법을 찾으려 그는 최근 만학으로 법학 학사모를 쓰기도 했다.

금융연구원은 금융 분야 최고의 두뇌집단(싱크탱크)으로 국책연구원은 아니지만 정부나 정책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 따라서 이 원장의 고성은 삼성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 고발에 비유되는 확증과 무게를 갖는다. 정부의 연구원 비틀기를 비판한 이 원장의 이임사는 코드 문제가 아니며 울림이 깊은 양심적 지식인의 내부 고발이다.

이 원장은 연구원에 부당한 압력을 가하고 경제성장률 예측치마저 정치변수화하는 천박한 정부의 행태를 고발했다. 동시에 그는 연구원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원장이 아니라 연구원들이며, 연구원에 대한 신망과 신뢰를 유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연구원들의 묵종과 굴신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정확한 분석과 판단은 연구의 생명이다. 위기 상황일수록 그러한 자율성과 독립성은 중요하다. 정부 입맛에 맞춰 상황을 왜곡하거나 조작한다면 국민경제에 큰 해악을 끼치게 된다. 과거의 예를 보면 또다른 위기를 불러오고 더 나아가 위기를 확대재생산시키는 원인은 시장에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은 탓이 컸다. 정책에 비판적인 연구원을 제거돼야 할 존재로 여기는 정부에 문제가 있지만, 불이익이 두려워 옳은 소리를 못하는 연구원도 용납될 수 없다.

연구원은 지식인이고 지식인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 특히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책연구원은 그러한 사명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지식인들은 목숨을 걸고 직언을 했다. 중종 12년 4월4일 아침 경연인 조강에서 특진관 이자건은 왕의 면전에서 입을 뗀다. “강원도에는 서리가 오고 눈이 내려 보리가 얼어 죽었다 하고, 여러 변괴가 함께 겹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성상께서 성심이 지극하지 못해 그런가 싶습니다.” 옆자리의 조광조는 “재변이 생기는 것은 조정의 불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부연한다.

상소문 한 장과 목숨을 바꾸겠다는 장렬함을 드러내는 경우가 지부복궐 상소다. 글자 그대로 몸에 도끼를 지니고 궐문 앞에 꿇어앉아, 자신이 올린 상소를 가납하지 않겠다면 지니고 있는 도끼로 죽여 달라고 몸을 던지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중봉 조헌, 구한말 면암 최익현이 그렇게 상소를 올렸다. 자기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임금의 소임을 깨우치며 나라의 명운을 열어 가리라는 참선비의 도리를 실행하려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절대 권력의 시대에도 지식인은 진실을 말했다. 하물며 민주사회에서 엄중한 위기를 맞았는데도 연구원들이 품격을 지키지 못한다면 남 탓할 게 아니라 근본 책임은 연구원이 져야 할 것이다.


정영무 논설위원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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