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
아침햇발
이명박 정부 출범 한 해를 되돌아보면 좋은 일이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악화일로의 남북 관계가 상대적으로 다른 분야보다 나아 보일 정도다. 하지만 남북 관계에서도 경제위기 못잖은 본격적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새해 첫날 공동사설에서부터 남쪽 집권세력과 정면으로 대립각을 세운 북쪽은 이후 당·정·군·외곽단체 등을 잇달아 등장시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무시·방관 정책과 북쪽의 압박 전술이 상승작용을 하면서 위기 수위가 높아지는 모습이다.
문제를 풀려는 노력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지금, 궁금한 것은 과연 위기의 끝이 어딜지이다. 양쪽 모두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2002년 2차 연평해전과 같은 일이 벌어질까, 개성공단은 결국 중단될까, 기존 남북 합의는 모두 휴짓조각이 될까. 그 이후 상황도 예측이 쉽지 않다. 냉전 때와 같은 소모적 대결이 이어질까, 아니면 극적인 돌파구가 찾아질까.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의 일부를 알 시기도 그리 멀지 않다. 두 차례의 연평해전이 벌어진 것은 모두 꽃게잡이 철인 6월이었고, 그에 앞서 지금처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신경전이 있었다. 지금 상황도 비슷하다. 북쪽이 내부 여론 결집에 애쓰고 남쪽 정부·여당의 태도가 딱딱한 것도 불길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주 ‘대통령과의 원탁대화’에서 “60년 분단 기간 중 1년간 경색된 것은 있을 만하다”고 했다. 이전의 남북 관계 진전을 모두 부인하는 아전인수 식의 인식이다. 이 발언이 부분적으로라도 타당하려면 먼저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내놓아야 했다. 지금 정책 기조로는 1년이 아니라 무기한 경색을 피할 수 없다.
정부는 위기에 무심하든가 아니면 위기 고조를 기다리는 듯하다. 비현실적 낙관론이거나 근본주의적 대결 심리다. 이런 태도는 당연히 북쪽 행보에 큰 영향을 준다. 체제 안전보장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북쪽에게 핵 포기 협상은 체제의 사활을 건 게임이다. 북쪽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이다. 남쪽이 무시·방관 정책을 계속하는 한 북쪽이 남북 관계에 공을 들이기는 어렵다. 북쪽은 의도적으로 통미봉남 전술을 택하는 게 아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 출범과 더불어 북한 핵문제 해결 노력은 냉전 종식 이후 가장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한반도·동북아의 장래 모습은 지금 각국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합리적 판단을 한다면 당연히 북-미 관계 개선을 적극 뒷받침하고, 이와 선순환 구도를 이루도록 남북 관계를 진전시켜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거꾸로 한-미 동맹을 활용해 북-미 협상을 견제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악순환 구도다.
위기를 위기로 여기지 않으면 더 큰 위기가 닥친다. 과거 김영삼 정권은 막연한 북한 붕괴론에 기대어 북-미 협상에 제동을 걸고 남북 관계를 소홀히 하다가 고립과 상황 악화를 자초했다. 반면 위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새 동력이 나올 수 있다. 2006년 북한 핵실험 이후 북한과 미국이 극적인 타협을 이룬 게 그런 사례다. 이럴 때 위기는 기회로 향하는 자산이 된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 내정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곧 열린다. 그는 이미 비현실적인 것으로 판명된 ‘비핵·개방 3000’ 정책을 입안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재산형성 과정 및 학술활동과 관련한 도덕성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그나마 그의 임명이 납득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대북정책 전환 계기로 삼는 것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장관 자격은 물론이고 남북 관계의 앞날도 없다. 정부는 위기를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김지석 논설위원jkim@hani.co.kr
현인택 통일부 장관 내정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곧 열린다. 그는 이미 비현실적인 것으로 판명된 ‘비핵·개방 3000’ 정책을 입안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재산형성 과정 및 학술활동과 관련한 도덕성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그나마 그의 임명이 납득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대북정책 전환 계기로 삼는 것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장관 자격은 물론이고 남북 관계의 앞날도 없다. 정부는 위기를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김지석 논설위원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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