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
기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는 1997~98년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전세계가 동시 불황이다. 수출 대기업을 앞세운 수출 확대 전략만으로는 도저히 이 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없다. 또한 97년에 공공 부문과 기업들이 앞다투어 진행했던 사람 자르는 방식의 구조조정 역시 한계가 명확하다. 발상을 전환할 때가 되었다. 미국, 유럽연합 등의 경제위기 대처 방식을 눈여겨보면 한국과 다른 몇 가지 점이 눈에 확 들어올 것이다. 그것은 바로 국가가 앞장서 추진하는 ‘사람’과 ‘미래’에 대한 집중투자 전략이다.
무엇보다 서민 중산층의 소비 여력을 최대한 늘리려는 재정 투자다. ‘부자들만을 위한 감세’는 이미 실패한 정책임을 부자 감세의 선두주자 미국에서조차 인정하고 있다. 나라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감세보다는 내수 진작에 직접적인 효과가 있는 서민·중산층 직접 지원에 더 무게를 둔다. 감세를 하더라도 그 대상이 명확하게 서민과 중산층이다. 교육비, 직업훈련비에 파격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복지비를 줄이기보다 더 늘리고, 아예 서민들에게 돈을 쓰라고 상품권을 나눠주는 ‘퍼주기’ 정책도 과감하게 펼치고 있다. 미국은 골칫덩어리인 의료보험 체계를 뜯어고쳐 의료비로 멍드는 서민·중산층의 살림살이를 돌보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왜냐하면 현재로서는 내수를 늘리는 것이 경제위기를 탈출하는 불가피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한겨레-참여연대의 ‘민생 뉴딜’ 공동기획이 내내 강조했던 것도 바로 서민층에 대한 획기적인 지원책 마련이었다. 서민들을 지원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도덕적이면서 서민들의 소비 여력도 회복돼, 내수가 살고, 그것이 경제 살리기로 이어진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이기도 하다.
실업의 공포가 만연하고 실업이 곧 보통사람들의 삶의 붕괴로 이어진다면 공동체 자체도 유지하기 어렵다. 고용의 유연성을 강조하기에 앞서 실직자를 위한 실업급여를 최대한 보장하고, 미래지향적 직업훈련에 국가가 나서야 한다. 고용유지 정책, 일자리 나누기 정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데 노력해야 한다. 또한 주거비나 등록금 등 교육비, 의료비와 같은 개별 가계들이 힘겨워하는 지출 쪽은 공공 지원 제도를 통해 부담을 완화해 주어야 한다. 특히 어려운 때일수록 사람의 능력을 키워 나가는 것, 즉 보육·교육·직업훈련·기술개발에 대한 과감한 국가 투자만이 미래에 살아남는 데 유효한 대안임은 너무도 명확하다.
또한, 주요 국가들은 미래를 준비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녹색투자에 말 그대로 매진하고 있다. 유럽의 주요국들은 국가 재정을 들여 저탄소에너지 산업, 생태 농업에 투자하고 있다. 특히 모든 건물에 단계적으로 이중창을 설치하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는 흥미로운 소식도 들린다. 이중창 설치만으로도 에너지 소비량을 현저히 낮출 수 있다니 에너지 전량을 수입하는 우리로서는 안성맞춤의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중창을 설치하는 작업은 토목공사에 견줘 사람 손이 많이 드니 일자리도 늘어난다.
우리는 선진 주요국들과는 정반대로 ‘극소수 부자, 재벌 대기업 지원’과 과거지향적 ‘토건사업’에 어마어마한 재정 투자를 하고 있다. 경쟁력 있는 대기업이 절실하고 건설 수요가 넘쳐났던 70~80년대라면 통용될 법한 경제위기 타개책일지 모르나, 2009년인 지금에는 낡아도 너무 낡은 대책이다. 현정부가 발표한 ‘녹색 뉴딜’을, 오죽하면 전문가들이 ‘녹슨 삽질’이라고 이르겠는가. 지금이라도 과감히 정책 방향을 틀어 사람과 미래에 투자하라. 그것만이 우리 공동체가 사는 길이다.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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