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호 논설위원
아침햇발
오래 알고 지낸 고향 형님을 몇 달 전 만났더니 의논 좀 하잔다. 들어보니, 요즘 같은 청년실업 시대엔 배부른 고민이다. 사법연수원을 마친 아들이 법원과 검찰 가운데 어디로 가는 게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형님 부부의 뜻과 달리, 당사자는 검사 쪽으로 기운 듯하다고 한다.
선뜻 그리하라고 권하지 못했다. 성적을 보면 어디에서도 환영받을 만큼은 된다니, 웬만하면 판사가 낫지 않겠냐고 말했다. 돈 문제까지 입에 올렸다. 언젠가는 변호사로 개업할 것인데 민·형사를 두루 거치는 판사 출신의 선호도가 높지 않겠느냐, 요즘은 형사사건에서도 구속이 줄어든데다 구속적부심 등으로 법원이 결정권을 갖는 경우가 많아 검사 출신의 인기가 예전같지 않다더라, 그래선지 검찰 주변에선 북풍한설에 나가 고생하느니 말 잘 듣고 꼼짝 않는 게 낫다는 분위기도 있다더라 따위 이야기를 했다. 벅찬 가슴으로 이제 막 출발하는 이에겐 시답잖게 들릴 얘기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맑고 착한 성품의 그 아들이 검찰 조직에서 잘 지낼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어느 조직이든 힘든 일이 없을 순 없다. 조직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보직이나 승진도 마찬가지일 게다. 밖에서 보고 듣는 게 안에서 겪는 것과 같지도 않을 터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고 듣기로, 법원과 검찰은 다르다. 연수원 성적대로 평생 줄 서서 간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법원은 그나마 설명이 가능한 편이다. 검찰에선 좋은 성적이나 수사 솜씨, 실적 따위가 다는 아닌 듯하다. 그런 조건을 갖춘 사람들까지 일찍 검찰을 떠나거나 세월만 낚는 모습을 많이 봤다.
예컨대, 맡은 사건이 무죄로 판결 나면 인사상 감점 요인이라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최근 수사했던 사건 가운데 외환은행 헐값매각 및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현대차 로비 수뢰 의혹, 대우그룹 구명 정·관계 로비 의혹, 공기업 비리 의혹 관련 몇몇 사건 등 상당수가 잇달아 무죄선고를 받았다. 그런데도 이들 사건 수사를 주도했던 검사는 ‘무죄 대왕’이란 말까지 들으면서도 좋은 보직과 승진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가 맡은 사건들은 대부분 정권의 관심과 이해가 걸린 것들이었다. 나중 결과야 어떻든 그 시점의 효과만 놓고 보면, 그는 솜씨 있게 일 처리를 하는 사람일 게다.
검사는 밥상을 차리는 사람이고, 판사는 밥상을 받아 품평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검사 출신인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예전에 판사와 검사 출신 정치인의 성향을 빗대 한 말이다. 그런 밥상을 주문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경우도 있다. 그가 요리사를 좌지우지할 힘을 지녔다면 어찌될까. 주문자의 뜻과 달리, 불량 식재료는 못 쓰겠다거나, 허술한 밥상을 낼 순 없다고 ‘식객’의 자존심을 내세운다면 불이익을 각오해야 한다. ‘피디수첩’ 사건에서 무혐의를 주장하다 검찰을 떠난 임수빈 전 검사가 그런 예다. 반면, 밥도 없이 주문대로 억지 구색만 갖춘 밥상도 보너스를 받는 경우가 있을 게다. 경찰의 책임을 아예 묻지도 않은 ‘용산 철거민 참사’ 수사가 그런 예가 아닐까.
고향 형님에겐 아들이 검찰에서 삼키고 감내해야 할 게 폭탄주만은 아닐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젊은 그에게 ‘상부의 뜻’을 잘 헤아려 출세하라고 권할 수는 없었다. 이런저런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헤어졌던 형님은 얼마 뒤 아들이 고심 끝에 검찰로 가기로 했다고 전해 왔다. 이제 그는 검사다. 초롱초롱한 눈빛의 그에겐 세상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포부와 자신이 있었을 터다. 검찰 조직이 그 뜻을 꺾지 않았으면 하는 건 기우나 모욕일까.
여현호 논설위원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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