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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언론입법 주장의 허구성 / 방정배

등록 2009-02-13 20:39수정 2009-02-13 20:40

방정배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방정배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기고
언론관련법이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뇌관으로 떠올랐다. 시도 때도 없이 열리는 토론회에서 언론법 찬반에 대한 여야 주장들이 밑도 끝도 없이 앵무새처럼 반복되고 있다. 백가쟁명식 찬반 주장을 보면, 거짓 주장이거나 정당화 근거가 결여돼 있다.

첫째, 선진국의 다매체 겸영이나 소유 규제의 정도가 한국 언론입법의 타당한 근거가 될 수 없다. 먼저 우리가 왜 그것을 따라가야 하는지 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한국적 특수 상황에서 우리는 언론시장 진입 규제를 하고 있고, 선진국에서는 그 나라의 특성에 맞게 시장점유율을 엄격히 규제하는 등의 방식을 택할 뿐이다.

둘째, 나라별 규제 방식의 차이에도, 규제 목표는 ‘여론시장 독과점 방지’로 같다. 미디어 융합과 거대 복합 미디어그룹 육성이 국제 추세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인터넷 출판, 비디오, 음반, 드라마, 스포츠 채널 등의 ‘엔터테인먼트 미디어’와 신문, 종합방송, 보도채널 등의 ‘저널리즘 미디어’가 구분된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세계 굴지의 복합 미디어그룹들은 예외 없이 ‘엔터테인먼트 미디어’요, 상업적 돈벌이 미디어다. 미국 복합 미디어그룹 타임워너, 독일 최대 미디어그룹 악셀 슈프링거, 프랑스의 세계적 미디어그룹 비방디그룹 등이 그러하다. 설사 이들 미디어그룹이 신문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그건 주력이 아니다. 예컨대 독일 미디어그룹인 슈프링거 그룹의 저널리즘 매체시장 점유율은 5%도 되지 않고, 최대 신문 재벌인 바츠(WAZ)그룹조차 전체 신문시장의 7.5%만 점유하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저널리즘 미디어’를 주축으로 한 복합 미디어 그룹은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셋째, ‘소공영 다민영’ 방송이 세계적 추세인 것은 맞다. 영국은 공영방송 <비비시>(BBC) 이외 모든 방송이 민영방송이고, 독일은 <아에르데>(ARD), <체트데에프>(ZDF) 이외의 수백개 채널이 민영방송이다. 공영방송이 적은 것은 우리나라의 10배에 이르는 높은 수신료 구조 때문이다. 그러나 주목해야 하는 것은 공·민영 이원 방송체계를 운용할지라도 ‘저널리즘 미디어’ 성격인 의견시장 점유율은 ‘소공영’이 ‘다민영’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이다.

넷째, 복합 미디어그룹이 생기면 방송 매출액이 폭증하고 고용 창출 효과가 높다는 논리는 합당한 근거가 뒷받침돼야 한다. 여권은 이 논리를 정당화하려고 프랑스 ‘미뇽 보고서’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미디어 규제완화 보고서’를 인용한다. 각계 의견을 수렴한 언론개혁보고서인 ‘미뇽 보고서’의 핵심은, 언론 미디어 규제 완화에 의한 거대 복합 미디어그룹 육성이 아니고, 미국 할리우드 대중문화 콘텐츠에 항거할 수 있는 거대 엔터테인먼트 미디어그룹을 육성하자는 권고다.

미디어 규제 완화로 ‘방송 매출 1조6천억 순증, 2만개 이상 고용창출’이 된다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보고서는 완전한 허구다. 이 보고서를 대통령도 인용해 “경제 살리기 법안”이라고 외치는 것은 세계적 웃음거리다. 방송 매출의 대부분인 한해 3조원가량의 방송 광고는 수년 동안 정체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 1조6천억원이 증가한다니 말이 되는가. 일자리도 2만개는커녕 200개나 생길지 의문이다. 미디어기업엔 거의 전문직 일자리뿐이어서 토목공사장의 일용직 고용과 다르다.

디지털적 다매체 융합시대에도 언론 미디어 시장은 그 점유율 규제를 통한 여론다양성 보장이 보편적인 민주적 명령이다. 따라서 재벌과 특정 신문을 위한 언론입법이 아닌 진정한 엔터테인먼트 복합 미디어그룹 육성을 모색하는 것이 한국 언론 발전과 국가 경쟁력에 이바지하는 길이다.

방정배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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