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
기고
2005년 8월 노회찬 의원은 199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삼성그룹 고위 임원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만나 특정 후보에게 대선 자금을 지원하기로 논의한 내용 등이 담겨 있는 국가안전기획부의 도청파일에서 삼성그룹으로부터 정기적으로 돈을 받은 것으로 거명된 검사들의 이름을 공개하였다. 이에 대해 지난 2월9일 법원은 첫째 형법 제307조 2항 허위의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둘째 통신비밀보호법 제16조상의 불법감청 내용의 공개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하였다.
첫째, 명예훼손에 대한 판시는 소가 웃을 일이다. 법원은 엑스파일에는 ‘떡값을 주기로 한 계획에 대한 논의만이 나올 뿐 실제 떡값을 주었는지 언급하지 않았다’고 하여 유죄판결하였다. 그러나 엑스파일에 그 얘기가 안 나온다고 해서 이들이 떡값을 받지 않은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판결문 어디에도 ‘떡값 검사’들(임채진 검찰총장 포함)이 실제로 떡값을 받지 않았다는 판시는 없다. 즉 허위의 입증이 없다. 미국이라면 노회찬에 대한 명예훼손 재판은 실제 해당 검사들이 실제 떡값을 받았는지를 다투는 재판이 되었을 것이다. 국민들이 그토록 원하였던 그리고 검찰의 자체 조사에 의해 무산되어 버린 바로 그 재판 말이다. (제307조 1항의 진실에 의한 명예훼손도 있으니 허위 여부가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 경우 공익을 증명하면 면책되는데, 판결문에는 실제로 ‘공공의 이익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되어 있다.)
둘째, 통신비밀보호법에 대한 판시도 법의 입법 목적을 망각한 것이다. 불법도청이 발견된 후에는 불법도청을 한 자와 이들을 수사한 권력기관만이 대화 내용을 알고 있게 된다. 대화 내용이 공적 사안인 경우, 정보의 불평등이 발생하고 정보를 가진 자는 이를 무기로 대다수 국민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는 국민들이 그 내용을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1970년대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들은 불법공개된 정보라고 할지라도 공적인 사안이라면 이를 합법적으로 취득한 언론사는 보도할 수 있다는 법리가 세워져, 2001년 ‘바트니키-보퍼(Bartnicki-Vopper) 사건’에서 감청 정보까지 적용되었다. 즉 폭력행위의 모의가 불법감청된 경우 그 공개가 폭력행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경우 감청 내용을 합법적으로 전달받은 언론사는 그 내용을 보도할 수 있다. 미국의 통신비밀보호법(ECPA) 역시 우리나라처럼 감청 내용의 공개를 별도로 금지하고 있음에도 그러하다. 2007년 ‘진(Jean)-매사추세츠주 경찰국 사건’에서 다른 연방항소법원은 불법녹화된 영상이 언론이 아닌 누리꾼에 의해 인터넷상으로 공개되는 것이 합법이라고 판시하였다.
불법감청된 공적 사안은 신속히 공개하여 정보의 불평등을 해소할 필요는 안기부 엑스파일과 같이 도청자가 국가일 경우 훨씬 크다. 도청자들과 수사기관들만 알고 있는 수많은 공적 정보들을 국민은 모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삼성뿐만 아니라 수많은 국민들이 도청을 당했지만 아직도 우리는 누가 도청을 당했는지 무엇을 어디서 언제 도청을 당했는지 모르며 살아가고 있다. 통신비밀보호법이 우리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한답시고 우리 스스로가 알아야 할 정보를 덮어두고 있다. 법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법에 숨겨진 이상과 원칙을 찾아내어, 좋은 법이 나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도록 하는 해석의 힘과 의무를 가진 이가 법률가들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