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미 홍익대 교육학과 교수
시론
지난해 10월 치른 뒤 교사 파면·해임 등으로 논란이 많았던 일제고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번 결과와 비교하여 2011년에는 향상도 평가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그 결과는 학교별로 공개될 뿐 아니라 예산 차등 지원의 근거로 삼을 것이란다. 정확한 학력수준을 알아야 그에 대한 지원이 가능하지 않으냐는 게 교육과학기술부의 논리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서열이다. 시험 결과로 드러난 도시·농촌 차이와 대도시 안의 지역 차는 학교가 있는 지역적 특성과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교과부는 이러한 일반적 경향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예외적 사례를 일반화하면서 평가 결과가 학교 교육 역량의 결과인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일제고사에 명분을 부여하고 2011년 학교평가를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가 되기에는 빈약해 보인다. 학교평가의 근거로 활용하려면, 어떤 조건에서 학교간 단계별 비율이 다르게 나타나는지, 현재 드러난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알 수 있어야 한다. 현재는 학부모의 사회 계층, 가족 유형, 사교육 유형과 시간, 지역사회의 각종 교육 인프라 등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 결과에 대한 의미로운 해석은 어렵다. 학생의 사고력, 탐구력, 문제 해결력,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 창의성 등과 같은 기초소양들을 평가하는 시험인지, 단순히 지식의 양을 파악하는 문항들인지 알 수 없다. 보도자료에 나타난 것은 서열뿐이다. 이 서열을 가지고 2년 뒤에 평가를 해서 학교에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일제식 학업성취도 평가의 모델이 된 미국과 영국에서 학력이 낮게 평가된 학생들이 각 학교에서 기피 대상이 되었다는 보고들이 있다. 남의 일이 아니다. 이미 교육청들은 몇몇 예외적 우수 사례들을 부각하며 ‘학교가 노력하면 된다’는 이미지 선전에 나서고 있다. 교과부의 한 담당자가 수도권의 학력이 낮은 이유를 ‘다문화 가정과 북한이탈 주민 밀집지역’ 때문이라고 보는 기사를 읽었다. 이는 ‘희생양 만들기’ 방식이다. 정확한 통계로 그런 결과가 드러났다고 해도 사회적 감수성이 있다면 조심스럽게 해야 할 분석이다. 불완전한 정보를 내놓는 정부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회 모두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뒤처지는 학생 없는 학교만들기.’ 교과부의 보도자료 제목이다. 중요한 원칙임에는 틀림이 없다. 원칙 자체보다 그것을 어떤 교육 철학을 가지고 수행하느냐에 성패가 달렸다. 유사한 이름의 법안(낙오자 방지법)을 운영해 온 미국은 오바마 정부 이후 결과의 책임보다는 ‘과정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전망이다. 뒤처지는 학생이 없는 학교를 만들자면 학생 개개인의 성장을 진심으로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학교 현실을 스스로 진단하도록 하고 상황에 맞는 대책을 강구하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교육적이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이 취약 계층에 속해서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면 가정-학교-사회가 연계된 입체적이고 일상적인 전문적 개별지원이 필요하다. 학력은 점수가 아니라 학업과 관련한 포괄적 소양이다. 학생들의 학력은 단지 지적 능력만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자원과 연결되는 문제다. 자아개념, 사고력, 문제 해결력 등 다방면적 요소들이 함께 성장하도록 도와야 하고, 그것은 장기전이 될 수도 있다. 일제고사를 통해 향상도를 평가하고 개선이 되지 않을 경우 학교 예산을 깎겠다는 발상은 단시안적이다. 오히려 교육개선을 위해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한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학교변화는 중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이윤미 홍익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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