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성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기고
오늘은 김수환 추기경님과 작별하는 날입니다. 지난 며칠 동안 수십만의 사람들이 추기경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고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서너 시간씩 줄을 섰습니다. 추기경님께서 선종 하심으로 더이상 세상 사람들을 찾아가지 못하게 되자 거꾸로 세상 사람들이 그 뜻과 사랑을 기억하며 이렇게 찾아나선 것입니다. 종교와 계층, 이념을 초월한 범국민적 추모 행렬이었습니다.
김 추기경님께서는 살아생전에 불의한 권력에 대해 예언자로서 정의를 선언하고,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르면 어디든지 찾아가셨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의 본분이라고 하셨지요.
온후한 추기경님의 강론은 불의한 권력을 흔들어 놓았고, 국민들을 깨웠습니다. 10월 유신체제, 광주학살과 군사독재 정권 등장, 6월 항쟁 같은 역사의 고비 고비마다 김 추기경님께서는 군사 정권의 정당성에 대해 비판을 했고, 고통받는 국민들의 소리를 대변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우리 역사에 대해 희망을 키워나갈 수 있었고, 혹독한 현실에서도 서로 의지하고 힘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20여년 전 6월 항쟁을 전후해서 추기경님이 계신 명동성당은 우리 사회에서 성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성당이 있는 그 땅 자체가 거룩할 리가 없습니다. ‘이곳에 피해 있는 청년 학생들을 체포하려면 추기경인 나를 밟고, 그 다음에 사제, 또 수녀들을 밟고 넘어가야 된다’고 하셨지요. 이웃을 위해서 희생하는 소금과 길을 비추는 빛의 역할을 할 때 교회가 ‘성소’가 될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이 거룩해지는 것도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 이 땅의 역사를 위한 헌신을 통해서 가능해지리라는 이치를 깨닫게 됩니다.
김 추기경님께서는 교회의 영역을 넘어서서 누구든지 만나셨고, 어디든지 가셨습니다. 다른 종교인들과 대화하고, 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물론 동일방직사건, 안동교구의 가톨릭농민회 오원춘사건, 애덕의 집, 난지도 주민, 사북탄광, 시흥 복음자리 등을 찾아다니셨습니다. 철거민, 구속자, 장애인들처럼 가난하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누구도 조금도 마다하지 않고 만나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구속학생이었던 저도 추기경님의 사랑을 입었습니다. 이렇게 추기경님께서는 사람을 사랑하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보여주셨고, 교회가 세상을 위한 존재, 역사에 책임지는 존재라는 사실을 각인시키셨습니다. 그래서 김 추기경님께서 활동했던 시기가 가톨릭 전교 225년 역사에서 가톨릭교회가 국민들로부터 가장 신뢰받고, 급격하게 성장한 시기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 자화상을 그려놓고 ‘바보야’라고 제목을 붙이셨지요? 권력과 재물, 소유와 누림이 성공과 지혜의 척도가 된 세상에서 섬김과 나눔, 사랑과 연대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떻게 ‘바보’가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목사로서 저는 하나님께서 그 ‘바보들’을 택해서 이 세상 역사를 이끌어가심을 분명하게 압니다.(고전 1:27-28)
김수환 추기경님, 이렇게 힘들게 먼저 가신 그 길에 이제 혼자가 아니십니다. 추기경님께서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길, 사랑과 평화, 희망을 이루는 그 길의 씨를 평생 뿌리지 않으셨습니까? 추기경님을 조문하기 위해 모인 숱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버리고, 이 역사를 짊어지고 나설 것입니다. 이 세상의 일은 남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추기경님,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권오성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권오성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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