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진화’ 담론 / 오철우

등록 2009-02-22 18:57수정 2009-02-22 20:55

오철우 기자
오철우 기자
유레카
찰스 다윈이라는 낯선 이름과 역시 낯선 진화론이 조선 땅에 알려진 것은 19세기 말. 여러 역사연구를 보면, 진화론은 1870~80년대 일본과 중국에 전해졌고 몇몇 조선 지식인들이 두 나라를 통해 진화론을 처음 접했다. 진화론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는 춘원 이광수가 <그의 자서전>에 쓴 젊은 시절의 회고에서 잘 나타난다. “‘살랴는 싸움’ ‘잘난 자는 산다’ 이러한 진화론의 문구를 염불 모양으로 외우고 술이나 취하면 목청껏 웨쳤다. 이렇게 되매 내 도덕관념은 근거로부터 흔들렸다. 착하신 하나님이 계셔서 세계를 다스리신다는 믿음 우에 섯던 도덕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선이 어디 있느냐 악은 어디 있느냐.”

사실 다윈의 생물진화론보다는 허버트 스펜서가 신흥 부르주아 사상이던 개인주의·자유주의에 기반을 두어 체계화한 사회진화론의 영향이 더 컸다. 그 진화의 담론은 여러 색깔을 띠었다. 나은 자는 이기고 못한 자는 패한다는 뜻의 ‘우승열패’ 사상은 “힘의 자연법칙”을 좇아 강국과 약소국의 현실을 순응하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다른 한편에서 그것은 민족자강론과 실력양성론의 바탕이었다. 또 야만을 극복하고 문명의 진화를 이루려는 근대 계몽의 샘물이었다. 이인직의 신소설 <혈의 누>(1906)는 “야만을 면치 못하면 살아서 쓸데 있느냐” 식의 계몽적 서사를 전한다. 버둥대는 인간사에 대한 염세도 불러일으켰다. “모두가 구더기다. 너도 구더기, 나도 구더기다. 그 속에서도 진화론적 모든 조건은 한 초 동안도 거르지 않고 진행되겠지! 생존경쟁이 있고 자연도태가 있고….”(염상섭 <만세전>, 1924)

다윈 진화론은 하나였지만 진화의 담론은 시대 분위기에 따라, 처지와 마음에 따라 여러 색깔로 쓰였다. 다윈 탄생 200돌을 맞아 쏟아지는 진화 담론들에는 이제 우리의 어떤 마음들이 담겨 있을까?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