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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폭력 테러와 ‘말의 테러’ / 박찬수

등록 2009-03-02 20:04수정 2009-03-02 20:12

박찬수 논설위원
박찬수 논설위원
아침햇발

지난 주말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 의사당에서 ‘폭행’을 당했다. 폭행 혐의로 부산 민가협 대표가 구속됐다. 전 의원 쪽은 “왼쪽 눈을 찔리고 주먹으로 얼굴과 가슴을 구타당했다”고, 민가협 쪽은 “전 의원의 멱살만 잡았을 뿐”이라고 엇갈린 주장을 편다. 그 지점에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이 설치돼 있지 않아 누구 말이 옳은지 가리기 쉽지 않지만, 설령 민가협 주장대로 전 의원 멱살만 잡았더라도 그 행동을 잘했다 할 수는 없다.

“이번 사건은 헌법기관이자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에 대한 명백한 테러”라는 김형오 국회의장 발언은 일리가 있다. “의사당에서 의원이 폭행당하는 정치 현실에 분노와 전율을 느낀다”는 한나라당 여성 의원들의 심정도 수긍할 만하다. 전 의원이 밉고 못마땅해도 그의 발언과 행동을 폭력으로 제압하는 건 어떤 이유에서건 용인될 수 없다는 지적은 옳다. 게임의 룰이 정해졌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도 허용하는 게 민주주의다.

그러나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이번 사건을 몇 해 전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테러에 비유하며 매머드급 수사본부를 차리고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을 마구 잡아들이려는 과잉수사 문제는 여기선 접어두자. 명백히 정치적 의도가 엿보이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사건 진상을 밝혀야겠다면, 지켜볼 수 있다.

내 눈길을 더 잡아끈 건, 동의대 사건을 바라보는 전 의원의 몹시 거친 인식과 발언이다. 부산 민가협 회원들은 전 의원이 동의대 사건 재심을 추진하는 법안을 주도한 데 항의하러 그에게 접근했다고 한다. ‘테러 사건’ 직후, 전 의원 누리집에 들어가 그가 올린 글을 읽었다. 말을 참 독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특히 한 대목은 너무 심하다 싶었다. “동의대 사건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과격한 폭력사건이다. 진압하러 들어간 경찰관 7명이 학생들에 의해 무참하게 불태워져 처참하게 살해된 극악한 사건이다.” 그는 학생들을 경찰을 불태워 죽인 살인자라고, 그런 ‘극렬불법 폭력배’에게 민주화 유공자란 호칭을 붙이는 게 말이 되느냐고 주장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인 1989년 발생한 부산 동의대 사건을 둘러싸곤 여러 평가가 나올 수 있다. 임무를 수행하는 경찰관 7명을 죽게 했는데도 그게 ‘민주화 운동’이냐고 말한다면, 그럴 수 있다. 숨진 경찰관 어머니들의 피끓는 절규에 지난 정권이 귀를 기울였느냐고 비판한다면, 그 비판에 공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학생들을 ‘경찰관을 불태워 죽인 살인자’라고 말하는 게 정당화될 수는 없다. 경찰관이나 학생이나, 어머니 마음은 똑같다. 자기 아들을 살인자라 부르는 글을 읽는 어머니의 마음을 전 의원은 생각해 봤을까?

학생들이 만들어 놓은 화염병 더미에 불이 붙으면서 큰 화재로 경찰관들이 숨진 건 사실이다. 동아일보사가 펴낸 1990년판 <동아 연감>에 실린 법원 판결문을 보면, 학생들이 고의로 불을 지른 게 아니란 건 분명하다. 발화 원인은 화염병 투척이지만, ‘경찰이 사용한 소화기의 분사압력에 의해 불길이 화염병 더미로 옮겨붙었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동아 연감>은 ‘경찰의 무리한 작전으로 화재가 발생했다’고 평가했다.


막장 드라마가 인기고 독설이 유행인 시대다. 그래도 입법권을 쥔 국회의원의 독설이 일반 시민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다. 전 의원 폭행을 감싸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때론 말이 주먹보다 더 아프게 누군가의 가슴을 칠 수 있다는 사실을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한다.

박찬수 논설위원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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