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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짐승이름] 굴뚝새 / 정호완

등록 2009-03-04 18:48

짐승이름
“입을 벌리고 잠을 자는 것은 인간뿐/ 삶이 그만큼 피곤하기 때문이다./ 굴뚝 속에는 더 이상 굴뚝새가 살지 않는다./ 보라, 삶을/ 굴뚝새가 사라진 삶을/ 모든 것이 사라진 다음에/ 오직 인간만이 남으리라/ 대지 위에 입을 벌리고 잠든 인간만이”(류시화·‘굴뚝 속에는 더 이상 굴뚝새가 살지 않는다’)

겨울철에 집안 굴뚝이나 울타리 주위를 맴돌며 산다고 굴뚝새라 부르는 이 새는 참새의 일종이다. 깃털이 진한 다갈색에 검은 가로무늬가 간간이 놓였는데, 거미나 벌레들을 잡아먹으며, 여름철에는 주로 산에서 산다.

옛날 마음씨 착한 형과 욕심 많은 아우가 한집에 살았다. 아버지가 물려 준 안채에 살던 형은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먼저 뜨게 된다. 임종 전 바깥채에 사는 아우를 불러 아내와 아이들을 부탁한다. 아우는 걱정 말라고 하고서도 조카들한텐 일만 시키고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는다. 큰조카가 겨울날 추위를 이기려고 부뚜막에서 자다가 아예 아궁이로 들어가 잠을 잔다. 깨어보니 불을 지폈는지 연기가 매워 구들 밑을 지나 굴뚝으로 기어오르니 더욱 견딜 수가 없었다. 마침내 죽어 굴뚝새가 되었단다.

굴뚝 주위를 맴돌며 저 집은 우리 집인데 삼촌이 빼앗아 갔다며 온갖 소리로 지저귄다니,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의 몫을 마구 집어 삼키는 가진자들이 있다면, 이 어렵디어려운 세계적 봄 불황을 맞아 뉘우칠 일이겠다.

정호완/대구대 명예교수·국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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