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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인권위 감축, 인권 역주행 / 유창선

등록 2009-03-09 19:08수정 2009-03-09 19:40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기고
국가인권위원회 전직 인권위원 16명은 지난 3일 긴급호소문을 발표하고, 행정안전부의 인권위 조직 축소 방침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인권위 조직이 축소되면 인권보호 기능이 심하게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하며, 정부는 조직 축소가 가져올 문제점을 헤아리고 인권 선진국을 지향하는 관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 방침에 대한 사회적 논란과 인권위 쪽의 반발을 무릅쓰고 정부는 기존 결정을 그대로 밀고 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달곤 행안부 장관은 “인권위의 인원 축소는 이미 결정이 난 상태라 다시 뚜껑을 열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지난 2001년 설립된 인권위는 우리 사회에서 인권보호에 의미있는 일을 해왔다. 한국의 인권위 활동에 대해서는 인권 선진국들까지 큰 관심을 가질 정도로 세계적인 상징성을 갖게 되었다. 한국이 현재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부의장국이며, 내년 의장국으로 유력하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특히 독립적인 국가기구로서 정부 각 기관의 인권정책이나 관행에 대해 적극적으로 시정을 권고함으로써, 정부정책에서 인권적 가치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긴장과 갈등이 따르기도 했다. 정부 각 기관으로부터 인권위 결정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고, 때로는 인권위가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인권위가 이라크전에 반대 의견을 표명했을 때는, 당시 이라크 파병을 추진했던 노무현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긴장은 인권위가 인권적 가치 실현을 위해 견제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당연한 현상이었다. 인권위의 적극적인 활동이 정부에는 부담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난 정부 때까지는 인권위의 목소리가 의미있게 국정에 반영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위 도중 숨진 두 농민의 사인이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이라는 인권위의 결정이 나왔을 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했고 경찰도 그 결과를 수용해 관련 규정을 대폭 개정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인권위를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진 듯하다. 업무에 비해 조직 규모가 과다하다는 행안부의 설명은 그리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 상담, 민원 건수는 해마다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인력의 ‘과다’가 아니라 오히려 ‘부족’이 문제가 되는 현실이다. 정부 조직개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감축이라 해도, 다른 일반 부처들의 감축 규모에 비해 터무니없이 큰 폭을 요구하는 데는 어떤 배경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국정운영에서 속도와 효율성을 우선하는 현 정부의 경우, 인권위의 활동에 따른 여러 견제가 성가실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 각 기관의 정책들을 사실상 견제하는 인권위의 기능을 과거처럼 보장해줄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도 들었을 법하다. 행안부의 입으로 인권위 축소의 실제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고 있지만, 인권 문제에 대해 그동안 현 정부가 보인 태도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인권위를 공연히 논란거리만 만들어내는 발목 잡는 기구로 여긴다면 이는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단견이다. 특히 현 정부처럼 ‘속도’만을 강조하는 경우, 인권위의 적극적인 활동이 국정운영의 균형을 잡을 수 있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일 수 있다. 문제는 규모의 축소가 역할의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정부가 끝내 인권위 축소를 강행한다면, 인권의 역주행이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정부의 재고를 촉구하는 이유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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