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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사법의 신뢰회복 시급하다 / 박재승

등록 2009-03-10 18:51수정 2009-03-10 21:23

박재승 변호사
박재승 변호사
시론
신영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재직 때인 지난해 허만 수석부장과 함께한 야간 촛불집회 사건 몰아주기 배당 문제가, 그가 당시 같은 사건 담당 판사들에게 보냈던 압력성 이메일들이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사법부 자체에 의한 사법권 침해 문제로 비화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사법행정의 일환이다, 압력인지 사법행정인지 미묘하다, 그 정도가 압력이냐는 반응을 보이면서 이제 다시 진상조사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신 대법관의 처신이 사법행정 사무라면 판사들에게 ‘논의된 내용이나 모임 그 자체도 대외적으로는 물론 대내적으로도 비밀’로 해 달라고 요청하였을 리가 없다. 또 부담되는 사건을 후임자에게 물려주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지만, 그것은 판사들 사이의 사적관계로서 기본권 보장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앞설 수 없다. 위헌 여부는 항소심에서도 고려해서 판결하므로 위헌 여부 결정을 기다릴 것 없다고 한 것은, 3심제의 헌법정신에 배치된다. “(재판) 결과가 신병(구속·불구속)과도 관계없다면” 현행법에 따라 결론을 내주라는 조건부 독촉이 갖는 함의에다가 ‘관심 가지고 있는’ 대법원, 헌법재판소, 그리고 ‘그 외의 관계기관들’의 의견도 같다는 점을 판사들에게 알린 점까지 합해 보면 그 처신은 모두 헌법정신에 배치되는 것이어서 사법제도 연구에 관한 사무가 될 수 없는 것이다.(법원조직법 제19조 제2항을 보면 사법행정 사무는 사법제도 연구에 관한 사무를 뜻한다)

문제는 그가 왜 헌재나 그 외의 기관의견까지 듣고 다녔는지, 과연 그 기관들이 어디인지, 그가 무슨 이유로 관계기관 의견까지 판사들에게 알렸는지다. 이쯤에서 그는 벌써 사법부의 위상을 크게 손상시켰고, 판사들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주었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사법행정인지, 압력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압력인지 아닌지는 전적으로 압력하는 쪽의 언행 자체에 의하여 판단될 문제다. 압력을 받아도 자기는 비굴한 판사가 되지 않겠다고 하는 판사도 많다. 그 분들은 사법부를 떠났지만 사법부를 아끼고 있다. 그 분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나 하였는가. 결국은 이 분들이 아름다운 판사로 기억된다.

신 대법관은 그 이메일을 지워버렸다고 한다. 몸통이 드러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데 상상이 미칠 수 있는 대목이다. 대법원이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어 두 번째 조사를 하고 있다. 그 조사가 만일 이메일 내용만으로도 가늠되는 것에 한정시키면 그 결과만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관계기관에 집중해야 한다. 국민들은 지금 거기에 관심을 두고 있다. 지금은 사법의 신뢰회복이 제일 큰 가치다. 이 점을 명심하여야 한다.

대법원의 조사위원회 구성에도 문제가 있다. 신 대법관의 행위가 사법행정 사항이라면 법원행정처장은 조사위원회의 구성원으로 적합하지 않다. 그는 사법행정 사무의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각급 법원장도 사법행정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다. 법원 내부 인사들만으로 진상조사를 하는 것도 신뢰회복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지금은 오직 신뢰회복에 신경써야 할 때다.

법관이 만일 사심에 끌려 재판한다면 그 폐해는 끔찍스럽다. 자기의 영달을 위하여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에 결정적인 피해를 주는 것이다. 당하는 쪽을 생각해 보라.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공화국의 기본요소인 법치와 인권을 송두리째 망가뜨린다. 공화국을 해체시켜 전체가 아닌 특정집단만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통합’은 구두선에 그치게 된다.

권력에 봉사하는 사법, 그런 모습으로 비치는 사법은 유신시대 사법 한번으로 족하다. 어떤 명분으로라도 법치와 인권은 포기할 수 없다. 권력에 봉사하는 사법은 법치의 이름으로 국민의 인권을 능멸하는 것이다. 사법은 오직 국민의 기본권 보장으로 구축된 신뢰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박재승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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