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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짐승이름] 이무기 / 정호완

등록 2009-03-11 18:50

짐승이름
“어서 이목이를 내 놓으라. 처형하러 왔노라!” 보양이 배나무를 가리키며, “둔갑한 이목입니다”라고 말하자 벼락이 나무에 떨어져 나무 허리가 잘리곤 조용해졌다. 마루 밑에 숨겨주었던 이목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바로 배나무를 만지니 되살아났다.(삼국유사)

신라 때, 논밭이 거북등이 돼 물 한 모금 구하기가 어려웠다. 보양이 절 옆 깊은 못에 사는 이목이에게 비를 내려 달라 부탁하니, 딱하게 여긴 이목이가 하늘의 시킴을 어기고 비를 뿌린 것이 문제의 빌미였다. 목숨을 건 일이다.

배나무와 관련지어 이목(梨木), 그 소리가 바뀌어 이무기가 됐다. 물론 전설이다. 이두식으로 읽으면 이목의 ‘이’가 뱀을 이른다. 이무기는 천년을 기다려야 뜻을 이룬다는 큰 뱀으로 알려졌다. 심형래씨가 감독한 영화 <디 워>에서 부라퀴는 하늘을 주름잡는 용이다. 세상이 어렵고 보니 한번 크게 바꿔 놓았으면 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들리는듯. 여기 부라퀴는 곰으로 치자면 불곰이다. 몹시 야물고 암팡스러우며 이로운 일이면 기를 쓰고 덤비는 사람을 이른다. 우리가 사는 길목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영화 끝자락에 아리랑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한민족의 쓰라린 한에 대한 씻김굿 같은 그런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무기는 나와 우리의 이야기요, 무의식이란 연못에서 끝없이 때를 기다리는 저마다의 영상인 것을.

정호완/대구대 명예교수·국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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