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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행안부의 칼날과 인권위 독립성 / 류제성

등록 2009-03-12 18:56수정 2009-03-12 20:42

류제성 변호사
류제성 변호사
기고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당시 최대의 쟁점은 인권위의 독립성과 실효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당시 정부는 인권위를 법무부 산하에 두고 싶어했고 인권위의 권한도 최소한으로 인정하려 했다. 만약 그 의도대로 되었다면 이라크 파병에 대해 반대의견을 내는 등 정부의 기조나 정책과 무관하게 오로지 인권의 관점에서 목소리를 내는 인권위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인권위의 독립성은 인권위가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러나 촛불시위 진압에 대해 인권침해라고 하고 사이버 모욕죄 도입, 국정원법 개정에 대해 반대의견을 내는 인권위가 귀찮은 이 정권은 계속 인권위를 흔들고 있다. 대통령 직속기구로 하려다 실패하자 이제는 행안부를 통해 직원을 줄이고 지역사무소를 폐지하고 정책·교육 기능을 없애라고 요구하고 있다.

행안부는 정부조직법에 따라 “정부조직과 정원”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고,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위원회의 조직에 관한 사항을 대통령령(직제규정)으로 위임하고 있으므로 자신의 요구가 정당한 권한행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인권위는 “다른 국가권력으로부터의 독립적 지위 보장”이라는 국가 인권기구 설립에 관한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기본준칙인 ‘파리원칙’과 헌법기관에 준하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요구에 따라 입법·사법·행정 3권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구로 설치되었다. 따라서 인권위는 행안부가 관여할 수 있는 정부조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옳다.

위원회법은 “위원회는 그 권한에 속하는 업무를 독립하여 수행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업무수행의 독립성 규정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과 국제적 기준을 고려할 때 이를 협소하게 “업무수행만”의 독립성으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 조직·정원이나 재정상의 독립 없이는 업무의 독립성 역시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원회법은 위원회의 업무로 인권관련 제도·정책의 연구와 인권교육 등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정책·교육 기능을 없애라는 행안부의 요구는 업무의 독립성을 규정한 위원회법에 정면으로 위반되고, 행안부의 권한인 직제에 관한 사항을 벗어나는 월권이다. 그리고 위원회법의 위임에 따른 직제규정은 상위법이 보장하는 위원회의 독립성을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만 유효하므로 직제규정의 개정일 뿐 인권위의 독립성과는 무관하다는 주장 역시 인정될 수 없다.

이처럼 행안부의 요구는 인권위 설립취지, 역사적 배경, 국제적 기준, 위원회법의 정신 따위는 깡그리 무시하는 처사며, 그간 인권위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보호와 신장을 위해 기울여 온 노력을 무위로 돌리려는 반인권적 폭거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우선은 이 정권이 인권위를 무력화하려는 기도를 막아내는 것이 급선무이겠지만 근본적으로 인권위를 헌법상 독립기구로 격상할 것을 제안한다. 대통령·국회·대법원장이 위원 선출·지명권을 나눠먹기식으로 하거나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 전원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 임명방식을 개선하여 자질검증과 민주적 정당성 확보장치를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하면 정권의 성향에 따라 인권위의 위상이 흔들리는 폐단을 막고 인권위를 통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제 인권위가 철거민의 인권보장을 위해 강제철거 5대 기본원칙을 제시하고 국토해양부 등 관계기관에 제도개선을 권고했다고 한다. 공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철저히 버림받은 철거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관이 그나마 하나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인권위에 박수를 보낸다.


류제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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