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미 홍익대 교육학과 교수
시론
올해 수시 2학기부터 이른바 ‘입학사정관 전형’을 시행하겠다는 대학들이 대폭 늘어났다. 입학사정관 제도란 신입생 선발을 관장하는 전문 사정관을 두고 성적만이 아닌 다양한 요소를 활용해 신입생을 선발하는 전형방식이다. 2007년 10개 대학이 입학사정관제 선도학교로 선정되어 지원받아 왔고, 최근 이를 확대 지원하는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대입 자율화에 따르는 ‘책임’ 문제는 입학사정관 제도를 통해 확보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대학들이 자율적이고 전문적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의 하나가 입학사정관 제도라는 것이다.
문제는 입학사정관 제도가 ‘주관적 전형’이라는 데 있다. 이것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다. 이 때문에 입학사정관 제도를 두고 ‘양날의 칼’이라는 비유를 쓴다. 수능, 내신, 비교과 요소 등 객관화된 기준들을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학생의 다양한 역량을 ‘종합적’으로 판단함으로써 단면적 평가방식을 넘어서는 장점을 지닐 수 있다. 한편 객관화된 요소들보다는 ‘종합적 판단’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공정성의 시비를 수반하기 쉽다.
입학사정관 제도의 모델이 되는 미국의 경험 속에서도 이 양면성은 잘 드러난다. 이 제도는 1910년 컬럼비아대학에서 시작되었다. 이 전형은 기존의 객관적 선발방식(지필고사)을 대체하는 ‘주관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었다. 시험성적 외에 비인지적 요소(인성 및 리더십)를 추가한 새로운 방식이었다. 이러한 전형방식이 20세기 초 유대인 신입생 수 급증에 대한 우회적 위기해결방식이었던 점은 주목된다.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캐러벨 교수는 이 제도가 당시의 신입생 구성을 변화시키려는 목적에서 출발한 것임을 상세히 분석한 바 있다. 물론 이러한 ‘태생의 한계’만으로 제도의 성격을 설명할 수는 없다.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소수자 보호조처들이 이러한 ‘종합적’ 전형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주관적이고 종합적인 전형이 지닌 ‘양날의 칼’이라는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칼 쥔 자의 정의’를 확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이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다는 것이다. 대입 완전자율화를 지향하면서도 교과부가 현 단계에서 ‘3불 유지’를 표방하는 이유의 하나는 대입의 공공성 혹은 공정성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는 대중 정서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유난히 표준화시험이나 객관식시험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주관적 평가의 기준을 신뢰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공명정대’하게 평가할 것이라고 믿지 못하는 것이다. 최근 일부 대학의 전형에서 불거진 고교등급제 논란은 이러한 불신이 나름대로 타당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카이스트 등 몇몇 대학이 앞으로 입학사정관 제도를 통해 학생들의 잠재력과 다양한 역량을 평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현재는 이 전형이 특별전형 대상자들에 대해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아직은 입학사정관 제도가 어떤 기능을 할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두 가지 점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학생의 역량을 다양하게 존중할 줄 아는 안목을 대학과 사회 모두가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점수=실력’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입학사정관제는 이미 충분히 복잡한 입시제도에 추가된 또 하나의 부담일 뿐이다. 다른 하나는 ‘양날의 칼’과 같은 불행이 예고된 제도라면 도입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준의 타당성과 공정성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칼 쥔 자의 정의’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기회균등을 생명으로 하는 제도교육을 위협하는 무기일 뿐이다.
이윤미 홍익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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