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
아침햇발
북한 관련 뉴스가 폭주하고 있다. 북쪽이 추진하는 인공위성 발사는 주로 대미 협상력 강화와 내부 결속을 노린다. 한-미 키리졸브 합동군사연습을 이유로 북쪽이 지난주부터 밀어붙이는 개성공단 통행제한도 이와 연관된다. 북쪽은 남북 사이에 일정한 긴장을 유지해야 국제사회의 눈길을 더 끌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남북관계가 좋다면 북쪽이 개성공단을 건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북관계가 한반도 정세 안정 요인으로서 가치를 잃은 데는 우리 정부의 책임이 적잖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4일 오스트레일리아 신문 <오스트레일리안>과의 회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근 활동을 보면 북한을 통치하는 데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며 “한국 입장에서 보더라도 북한 체제의 안정이 남북이 서로 협력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루 세끼 밥 먹는 것을 걱정하는 사회주의라면 안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 등의 이전 발언과 견줘 상당히 전향적이고 절제돼 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도 이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언급한 ‘남북 사이 합의 존중’과 관련해 “과거 ‘합의의 정신 존중’과 뉘앙스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며 “(대북 정책 추진에서) 매우 유연하게 대응하겠다”고 했다.
그렇다고 정부의 대북 무시 정책 기조가 바뀐 건 아니다. 이 대통령은 12일 국민원로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잘해 나가고 있다는 얘기를 듣기 위해 단기적 처방을 내놓는 것은 옳지 않다”며 “쌀과 비료만 준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기존 정책 유지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 대통령의 인식은 “남북이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 존중하면서 대화할 필요성을 느낀다”는 발언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이제까지 남북 대화에서 북한이 우위에 있었으며 이런 대화는 용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전 정권 부정 심리에서 나온 편향적 판단이다.
정부 핵심 관계자들의 인식도 비슷하다. 이들은 이전 정부가 북한의 버릇을 잘못 들여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거 김영삼 정권이 말하던 ‘북한 버르장머리 고치기’다. 정부가 최근 북한과 유엔사 사이의 장성급 회담에 반대하고 통일부가 인도협력국 폐지를 추진하는 것은 이런 인식의 연장선에 있다. 정부는 인공위성 발사 대응에서도 관련국 가운데 가장 강경하다.
지난주 초 북쪽이 개성공단 통행을 차단했다가 하룻만에 재개하자 한 정부 인사는 “이제 북한이 쓸 수 있는 수단이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북쪽이 굽히고 들어올 거라는 얘기다. 정부가 자주 하는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한다’는 말에도 이런 인식이 배어 있다. 그러는 사이에 개성공단 사업은 남북관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시금석이 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북한 미사일 계획에 대해 경고하면서도 “대화를 통한 북한 개방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북한 체제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로 대화노선 유지를 분명히한 것이다.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최근 강연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실용적 관점에서 유연하게 대북 정책을 펼쳐나가는데 우리만 좌우 이념 대립에 매여 있으면 우리 외교가 주도적이 되기보다 되따라가기 급급할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이 안심하고 개혁·개방을 할 수 있는 조건을 정부가 앞장서서 만들어 나가라는 조언이다.
쌀과 비료만 준다고 남북관계가 잘 풀리지는 않겠지만, 북한의 무조건 변화만을 앞세워서는 출발도 할 수 없다. 이런 비현실적인 인식의 덫은 남북관계의 전제인 신뢰를 쌓으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김지석 논설위원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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