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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경제학 아닌 경제학자를 비난하라 / 대니 로드릭

등록 2009-03-22 21:44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경제학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경제학
기고
세계경제가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면서, 경제 전문 비평가들이 현재 위기의 복잡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경제학자들은 그런 의문에 대답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금융의 완전한 자유화가 사회에도 이익이 된다는 관점을 정당화하고 대중화한 것은 바로 경제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정부의 과도한 규제의 위험성’을 주장할 때에는 대부분 익명으로 말한다. 그들은 전문적 지식을 통해 여론형성자로서뿐 아니라 권력층에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그들 중 위기가 닥쳐온다고 경종을 울린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더욱 나쁜 것은, 경제학자들이 세계경제가 현재의 혼란에서 탈출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을 제시하는 데도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정 확대를 통한 케인스주의식 경기부양책에 대한 그들의 시각은 ‘전적으로 필수적’이라는 것에서부터 ‘비효율적이고 해로운 것’이라는 것까지 광범위하다. 금융 재규제에 대해서도 생각은 넘쳐나지만 좀처럼 합의가 모아지지는 않는다.

지금의 경제학 교과서를 불태워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는가?

아니다. 경제학자들의 분석틀을 수단 삼지 않고선 현재 위기의 의미를 이해할 수조차 없다. 잘못은 경제학이 아니라 경제학자들에게 있다. 문제는 경제학자들이 자신들이 선호하는 모델을 과신하게 됐다는 것이다. 즉 시장은 효율적이며, 금융 혁신은 위험 부담을 분산시키고, 자율 규제가 최선이며, 정부의 개입은 비효율적이라는 믿음 말이다. 그들의 오만이 맹점을 낳았다.

경제 비전문가들은 경제학을 시장과 협의의 효율성을 우상화하는 학문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당신이 접하는 경제학 교과가 전형적인 입문 개론 수준이라면, 또는 당신이 정책적 문제에 대한 당장의 의견을 묻는 저널리스트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좀더 많은 고급 경제학 과정을 접해본다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노동경제학자들은 노동조합이 시장을 어떻게 왜곡시키는지뿐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생산성을 향상시키는지에도 초점을 맞춘다. 교역경제학자들은 불평등한 세계화에 내재된 의미를 연구한다. 금융이론가들은 ‘효율적 시장’ 가설의 실패에 관한 논문을 쏟아내 왔다. 개방경제 거시경제학자들은 국제 금융의 불안정성을 연구한다.

거시경제학은 경제학 분야 중 전문가와 실제 세계의 간극을 크게 벌려놓은 유일한 분야일 수 있다. 기술적 엄격함을 희생시킨 비현실적 모델에 의존한 데 따른 것이다. 슬프게도, 거시경제학자들은 존 케인스가 경제가 총수요 부족 때문에 어떻게 실업난에 처할 수 있는지를 설명한 이후로 거의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경제학에는 그야말로 다양한 모델이 있다. 경제학자의 노련함은 경제 상황을 설명하는 올바른 모델을 선택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경제학은 지금껏 공공의 논의를 반영하지 못해왔다. 경제학자들이 너무 많은 권리를 차지해온 탓이다. 경제학자들은 다양한 선택지를 제시하는 대신, 자신들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선호하는 시각을 곧잘 전달해왔다. 더 나아가, 경제학자들은 “교양 없는 대중에게 권한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지적 의심을 나누려 하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지금 나타나는 전문성의 혼란은 전문성의 진정한 가치를 잘 드러내 보인다. 경제학은 기껏해야 정책결정자들의 선택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을 뿐, 선택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경제학자들이 서로 동의하지 않을 때, 세계는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시각의 합리적 차이를 보게 된다. 공공사회가 경계해야 할 것은 경제학자들이 너무 많이 동의할 때이다.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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