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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북핵, 미국에 달렸다

등록 2005-05-17 21:33수정 2005-05-17 21:33

6자 회담의 미국 쪽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노련한 외교관이다. 생각이 다른 상대조차 그가 타협책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느끼게 만든다. 최근 그를 대북 특사로 보내는 계획이 추진됐다는 얘기가 나도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안타깝게도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상황은 유능한 외교관이라도 손을 쓰기 어렵게 한다. 그 원인은 북한과 미국 양쪽에 똑같이 있다. 자국과 상대국의 공통 이해를 찾아내 극대화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외교라고 한다. 이런 외교를 ‘공갈 게임’으로 대체한 게 북한이라면,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목표마저 모호하다는 점에서 외교의 여지를 좁힌다.

한쪽에는 북한의 핵 포기가 있고, 다른 쪽에는 북한 정권의 교체, 곧 부시 행정부가 악으로 꼽는 김정일 정권의 붕괴가 있다. 두 목표는 공존하지 못한다. 북한이 핵 무장을 고집하는 가장 큰 이유가 미국의 정권 교체 시도를 막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체제 보장을 약속하면 북한은 핵을 폐기할 것인가? 그렇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무엇보다 핵을 포기하지 않고 버틸 방법이 없다. 북한은 정치·경제·군사 면에서 세계 최강의 나라들에 둘러싸여 있다. 명분 없이 이들에 맞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미국이 그 명분을 제공해 왔다. 겉으로는 평화·외교적 해결을 내세우면서도 고비 때마다 다른 본심을 내보이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다.

스티븐 해들리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며칠 전 방송에 나와 북한의 핵실험 준비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 증거가 없는 인위적이고 근거없는 설’이라고 말한다. 중국 외교부의 한반도 문제 담당 국장도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했다. 핵실험 준비설을 처음 제기한 것은 미국 언론이고, 취재원은 정부 관리다. 미국 정부내 강경파가 미확인 정보를 언론에 흘리고 일본과 한국의 강경파가 증폭시키면 미국 강경파가 다시 쐐기를 박는 이런 양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목적은 북한 정권을 붕괴시켜야 할 당위성을 부각하는 데 있다.

부시 행정부는 지금까지 열린 네 차례 회담에서, 북한이 가장 우려하는 정권 교체 문제에 대해 진지한 제안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협상 무대가 마련되면 강경파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이나 직후에는 북한의 위험성을 부각하는 보도가 나온다.

미국은 북한에 대한 이슈를 하나 둘 추가해 왔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 반년이 지난 2001년 6월 처음으로 대북정책 기조를 밝히면서 핵 문제 외에 미사일과 재래식 군사력 문제를 더했다. 이어 2002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는 인권·인도주의 문제를 추가했다. 2003년 8월 열린 1차 6자 회담에서는 위조 화폐, 마약 거래, 테러, 납치 문제가 더해졌다. 미국 강경파로서는 최소한 대여섯 가지의 북한 정권 교체 명분을 확보한 셈이다.

이는 거꾸로 부시 행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북한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필요한 것은 두 가지뿐이다. 첫째는 대북 정책의 목표가 정권 교체가 아니라 핵 폐기에 있음을 분명히하는 것이다. 둘째는 증오심에 사로잡힌 강경파가 아니라 힐 차관보와 같은 외교관이 문제 해결을 주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왜 ‘김정일 정권과 함께 의도적으로 핵 문제를 악화시킨 공범’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지 곰곰 생각해봐야 한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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